[밀물썰물] "플라스틱 안돼"
“생수를 마셔야 하나, 정수기 물을 마셔야 하나?”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에 미세플라스틱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되풀이하는 질문이다. 유럽의 한 국가에서 판매되는 페트병 생수 1ml에서 평균 1억 6600만 개의 나노플라스틱, 국내 유통 생수 제품 30개 중 28개 제품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민이 심각해진다. 마트에 파는 과자, 대도시의 대기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함유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분석 기술의 발달로 미세한 크기의 플라스틱 검출이 가능해진 덕분이기도 하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축적되면 정자 수 감소, 면역 체계 변화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관리되지 않은 폐플라스틱 상당 부분은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부산의 백사장을 걷다 보면, 파도에 밀려온 해초 사이로 빼곡한 새하얀 스티로폼 알갱이와 페트병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가 우리나라 해안에서 발견된 쓰레기의 83%가 플라스틱이라고 할 정도이다. 인류가 쏟아낸 플라스틱으로 인해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한반도의 7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떠다닌다고 한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식탁까지 올라온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우리가 먹는 셈이다.
마침,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170여 개국 유엔 회원국 정부대표단, 국제기구, 환경 전문가, 취재진 등 4000여 명이 부산을 찾는다.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위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도출할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 글로벌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8년 만에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등 국내외 환경단체도 부산에 총집결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플라스틱 원료물질 생산국과 소비국 간 대립은 첨예한 상태이다. 세계 4위 석유화학제품 생산국이자 대회 개최지 국가인 한국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당장의 ‘먹고사니즘’을 선택할 것인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더 늦기 전에 플라스틱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이번 부산 회의를 계기로 2025년은 ‘플라스틱 제로’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