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고 결정 앞두고 쓰러진 형제복지원 피해자
과거 회상·진술, 소송 과정 고통
약물 복용 김의수 씨, 의식 없어
끝내 배상 못 받고 2명은 사망
“반성 없는 정부 상소, 2차 가해”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지난 1월 1심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국가 상고 여부 결정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최근 국가와 소송 중이던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숨지는 일도 발생하며, 국가가 상소를 멈추고 피해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4일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52) 씨는 지난 17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근처 길거리에서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고 쓰러졌다.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김 씨는 8일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 직전까지 아들을 걱정했다. 지인들에게 아들의 연락처를 남기며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법률 대리인에게 아들이 국가 배상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원고다. 지난 7일에는 법정에 출석해 판결을 직접 들었다.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판사 김대웅 황성미 허익수)는 김 씨를 포함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앞서 1심은 피해자 13명 모두에게 각각 2억~4억 원씩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김 씨는 국가가 상고할 것이라는 걱정에 시달렸다. 법률 대리인에게 국가가 상고할 수 있는지 물었으며, 가능성이 있다는 대답에 다시 불안과 절망에 빠졌다. 국가의 상고 기간은 오는 29일까지다.
김 씨는 2021년 5월 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약 3년 6개월의 지난한 소송 과정에서 김 씨의 몸과 마음은 망가졌다. 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확정적인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더 버티지 못했다.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해야 하는 소송 과정도 고역이었다. 김 씨는 11살이던 1984년에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3년간 강제 노역과 구타,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김 씨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동화 이정일 변호사는 “소송 과정 자체가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 일”이라며 “힘들게 기억을 가다듬어 법정에 서도 ‘주민등록상 생년월일과 형제복지원 기록상 생년월일이 달라 본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니 얼마나 속이 탔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한 소송 과정으로 고통받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김 씨뿐만이 아니다. 소송 중에 끝내 숨진 형제복지원 피해자도 있다. 지난 9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김대우(53) 씨가 부산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 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69명과 함께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7건을 제기했고, 합계 청구액 58%가 인정됐다. 하지만 1심 판결에 국가가 항소하면서 재판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김 씨는 국가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지난 9월 동구 초량동의 한 고시텔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서 모(64) 씨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서 씨는 1986년 부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대합실에서 잠이 든 뒤 철도 공안원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거나 숨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상소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이향직 대표는 “우린 피해자이지 죄인이 아니다”며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폭력임을 인정받고 배상받음으로써 명예를 회복하는 게 피해자들의 염원이다. 국가의 상고는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