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임계점에 다가선 기후 시스템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기후 안정성 급격히 약화돼도
복잡성에 정밀한 측정 어려워
미세한 변화 세심히 관측하고
정교한 분석 방법론 개발해야
직장이나 가정에서 안 좋은 일을 경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화를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를 억누르고 넘어가려 한다. 순간적인 감정적 반응보다는 이후의 관계를 고려해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일이 계속되거나 그 정도가 한계를 넘어설 경우, 참는 것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고 결국 언성이 높아지거나 감정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람마다 무의식적으로 설정한 임계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임계치가 넘어가면 행동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임계치의 존재는 단순히 인간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의 상변화는 임계치 개념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자연계의 좋은 예이다. 물은 온도가 섭씨 100도를 넘으면 끓고 0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으로 변한다. 이처럼 임계치를 기준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은 물리학적, 생물학적 시스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뇌의 뉴런은 자극이 임계치를 넘으면 활성화되지만 그 이하에서는 비활성 상태를 유지한다. 동물의 행동 역시 위험 신호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특성이다.
기후 시스템에도 임계치가 존재한다. 기후학에서는 이를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이는 현재의 균형이 깨지고 새로운 균형으로 급격히 변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북극 해빙, 아마존 열대림, 대서양 해양 순환, 남극 빙하, 영구 동토층의 메탄 등은 모두 임계치를 가지는 물리적 성질, 즉 티핑 포인트를 가진다. 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시스템이 임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역학에서는 임계치를 넘는 순간을 분기점(bifurcation)이라고 부른다. 분기점을 넘어가면 시스템은 급격히 변화한다. 따라서 분기점 근처에서 시스템이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파악하는 것이 예측에 매우 중요하다. 이론에 따르면, 시스템은 분기점 근처에서 임계더뎌짐(Critical Slowing Down)이라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는 외부 자극을 받은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현상이다. 분기점에 가까워질수록 시스템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외부 자극의 영향을 오래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임계더뎌짐을 포착하는 것이 기후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가령, 전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북극 해빙이 평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파악해야 한다. 또한, 여름철 폭염의 영향이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반도 주변 해수 표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는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 현재 기후 시스템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판단하게 된다.
이처럼 기후에서의 임계더뎌짐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기후 시스템은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특정 현상의 안정도가 정량적으로 얼마나 약해지는지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은 신입 사원은 속이 타들어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어도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서 폭발하는 분노를 억누를 수 있다. 그러면 주변에서 관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신입 사원의 분노의 정도와 지속성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의 표정, 말투, 그리고 행동의 작은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그 분노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기후 시스템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복잡한 신호를 정교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기후 시스템은 마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신입 사원과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폭발적인 분노의 감정이 깊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기후 시스템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를 간과하거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임계점으로의 접근 여부를 판단하려면 기후 시스템 내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를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또한 외부 요인이 내부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즉, 기후 변화가 표면적으로 감춰져 있어도, 미세한 신호를 감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정교한 관측 시스템과 더불어 이를 수치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통계적 방법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접근만이 우리가 기후 시스템의 객관적 상태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