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바다 누볐던 이어도호, 마지막 임무는 ‘금성호 구조’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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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이어도호 퇴역행사 열려
해양 조사선 중 최장 현역 활동
천안함·세월호 참사 때도 출동
첨단 장비 갖춘 이어도2호 대체

지난 26일 거제시 장목면 부두에서 33년 간 항해를 마치고 퇴역한 이어도호가 정박해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지난 26일 거제시 장목면 부두에서 33년 간 항해를 마치고 퇴역한 이어도호가 정박해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68만km. 지구를 17바퀴 돌아야 하는 거리다. 국내 최고령 해양 조사선 ‘이어도호(357t)’가 33년간 바다를 누빈 거리이기도 하다.

이름도 낯선 이어도호는 늘 대한민국 바다 최전선에 있었다. 어느 날은 해양조사를 하고, 어느 날은 사고 현장에 출동해 구조 핵심 역할을 했다. 작고 낡았지만 필요하면 늘 달려가 고된 임무를 수행하던 이어도호가 금성호 구조 현장을 끝으로 항해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는 지난 26일 거제시 장목면의 KIOST 남해연구소 부두에서 이어도호 퇴역식을 진행했다. 1992년 3월 취항한 이어도호는 국내 해양 조사선 중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한 배다.

이어도호는 기후 변화, 해양 자원 조사, 해양 방위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본래 유인잠수정 ‘해양 250’의 모선이자 연근해용 연구선으로 건조됐지만 이후 심해·대양 탐사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해군과 함께 진행한 ‘해양특성조사사업’과 ‘한국해역 종합해양환경도 작성연구’ 등에 투입돼 한반도 주변의 해양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톡톡히 이바지했다.

아울러 일찍부터 우리나라 연근해는 물론 해외 해역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92년 우리나라 첫 국외 해양 기술 용역 사업인 ‘필리핀 해저 전력 케이블 건설 해양 조사’에 참여했고, 1998년에는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리 과학자들이 북한 금호지구 앞바다를 해양 조사할 때 활용됐다.

바다에 재난이 닥칠 때면 최전방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천안함과 세월호가 침몰하고, 독도에 헬기가 추락한 현장에도 늘 이어도호가 있었다. 해양 재난 현상의 사고 수습 조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2007년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 사고, 2010년 천안함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해양 상황을 정밀 관측하고 사고 수습을 위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했다. 2019년에는 고성군 거진 앞바다에서 ‘해경 72정’으로 추정되는 침몰 선박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어도호에 탑승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들이 독도 주변 해양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이어도호에 탑승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들이 독도 주변 해양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이어도호에서 13년을 일한 KIOST 진성일 선장은 “이어도호가 가지 않은 해양 재난 현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노후화가 심각해 부품이 단종되며 수리도 제때 해주지 못했고, 제어도 일일이 다 해야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제 역할을 다해준 이어도호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부품을 구하기도 힘든 노후선박이 현장을 가리지 않고 출동하는 모습은 늘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 많은 일을 하고도 배가 버텨주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단했던 철판에도 구멍이 뚫리고, 어떤 방법을 써도 엔진이 다시 생기를 찾기 힘들어졌다. 이어도호는 퇴역 직전까지 금성호 침몰 현장에 투입돼 수색 작업을 이어갔고, 마지막 소임을 마친 뒤 다시 올리지 않을 닻을 내리었다.

그간 ‘이어도호’가 수행해 온 임무는 내년 상반기부터 첨단 장비를 갖춘 ‘이어도2호(732t)’가 대체한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이어도호가 쌓아온 연구 성과는 우리나라 해양 과학의 역사”라고 치켜세웠다. 이어도호는 선장과 승무원 배웅을 받는 퇴역식 때도 아무 표정이 없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할 일에 평생을 바쳤던 노병이 그곳에 있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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