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서른 살이 되니 보이는 부모님 얼굴
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10년 전 드라마 하나를 소환하고 싶다. 2013년 SBS에서 방영했던 ‘상속자들’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상속자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차은상(박신혜 분)이 부유층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사건사고를 겪으며 사랑과 우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에 우연히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19살이던 주인공들이 10년 뒤 29살은 어떨까 상상하는 장면이었는데, 주인공들은 이뤄놓은 것도 많고, 회사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올랐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완전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19살에 딱 생각했던 29살의 모습이다.
생각보다 서른은 더 빨리 찾아왔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그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해가 바뀌면 곧 서른이지만, 아직 뭔가를 이뤄가는지는 잘 모르겠고, 여전히 진로는 고민되고, 외면만 훌쩍 컸지만 내면은 어린아이의 모습 같다. 그렇지만 세월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보다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가 아닐까 싶다. 하얗게 센 아빠의 흰머리, 함께 여행 갔을 때 느껴지는 엄마의 줄어든 체력, 괜히 키가 줄어든 것 같은 엄마·아빠의 뒷모습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에 부모님이 내가 크는 것을 보면서 세월을 체감했다면, 이제는 내가 부모님이 늙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세월을 느껴야 하는 순서인가 보다.
누구도 저 혼자 자라지 않았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나이
젊은 층이 세월을 실감하는 순간은
나 아닌 부모의 나이 듦이 보일 때
받은 사랑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경제적 부양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나의 나이 듦과 부모의 나이 듦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 이유가 있다. 무릇 서른이 되었다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그렸던 서른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통계청의 가족 실태조사 결과, 20~29세는 부모를 경제적으로 모셔야 한다는 질문에 32.4%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30~39세는 36.9%가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 부양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과거의 인식 조사와 비교했을 때는 적은 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님을 직접 모셔야 한다는 질문에 20%만이 긍정 답변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데에는 더 많은 수가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벌써 노후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2030 세대의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부모님 노후는 젊은 층의 관심 대상이다. 함께 동거하면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많이 없지만, 부모님의 은퇴와 본인의 커리어를 함께 생각하면서 미래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나이 서른을 곧 앞두었거나, 서른을 조금 지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제서야 곧 서른을 맞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체감되었다. 내 나이가 드는 만큼 늙어가는 부모님 나이 말이다.
과거에 비해서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은 부모님이 늘었다는 인식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부모의 나이가 어릴수록 노후 준비에 자녀가 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70대 이상 부모의 64.6%는 자신들의 노후에 자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60세 이상~70세 미만에서는 53.7%로 떨어지고 50대 이상~60대 미만에서는 48.5%로 50%를 밑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 부모님 중에서도 자녀들과 함께 사는 미래를 그리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부모님들은 많이 없다.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가는 만큼 본인들의 힘으로 노후를 꾸리기 위해 더 도전하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우리 부모님도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들 부모님도 노후를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새롭게 대학 공부를 시작한 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에 부모님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20대를 지나면서, 어른이란 지키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강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지키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조부모, 반려자, 반려동물 등 사랑하는 존재들 앞에서는 이런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까.
한없이 어리고만 싶은 마음과, 강한 어른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스물아홉 살을 떠나보낸다. 10년 전, 드라마 속 차은상이 떠올렸던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내가 혼자선 이만큼 자랐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부모님의 주름살을 처음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을 지킬 수 있는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