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구 자전축과 대한민국 성장축
수도권 일극체제 자전축 무너진 지구 같아
부산 50년 전 성장억제도시 묶여 쇠퇴 일로
글로벌특별법 대한민국 균형축 정상화 첫발
지구가 둥글고 23.5도로 기울어진 채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인류는 현재와 같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지구 어디서든 밤낮의 길이가 12시간으로 똑같았을 것이다. 계절 변화도 없어 적도 지역은 지금보다 훨씬 뜨겁고 북극과 남극은 혹독하게 추운 기후가 되었을 것이다. 중위도 역시 따뜻한 봄과 서늘한 가을은 없어지고 길고 극심한 여름과 겨울만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영화 ‘설국열차’나 ‘매드맥스’와 같은 아비규환 속 디스토피아가 펼쳐졌을 것이다. 지구가 적절하게 기울어져 있기에 지구상 인류가 저마다 특색 있는 환경 속에서 고루 잘 살 수 있는 최적의 기후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반면 지구에 비유하자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성장축이 수직으로 꼿꼿이 선 채 요지부동한 모양새다. 서울을 정점으로 한 수도권에는 과하다 싶을 만큼 태양광이 내리쬐는 반면, 반대편의 비수도권은 싸늘한 냉기가 감돈다. 수도권 시민들은 내성 한계를 향해 치닫는 뜨거운 열기에 녹초가 돼 가고, 비수도권 지역민들은 추위에 몸서리치다 온기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간다. 국가 성장축을 적절히 조정하지 않고 자본과 경제 논리에 맡겨둔 탓에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에 잠식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토록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수도 서울과 수출기지 부산이라는 양대 거점이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경부축을 형성해 대한민국 성장 엔진을 맹렬하게 돌렸다. 미국과 일본으로의 수출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부산항을 중심으로 남동임해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삼성 LG 등 대한민국 대기업의 모태가 발아되면서 부산은 산업화를 이끌었다. 명실공히 제2도시 부산은 국토균형발전을 떠받치는 굳건한 보루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2년부터 부산은 성장억제도시로 묶였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사회문제 해소를 명분으로, 발전에서 소외된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 부산에서 법인을 설립하거나 공장을 지으려면 다른 지역보다 취·등록세를 5배나 더 내야만 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2년에는 아예 성장억제 및 관리도시로 못 박아 기업들의 역외 이전을 부채질했다.
이렇게 기업 환경을 옥죄는 와중에 1980년대 중반 이후 주력 산업인 신발과 섬유 산업이 쇠퇴하고 중공업이나 첨단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재편에도 실패하면서 부산 경제는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삼화고무나 동명그룹, 국제그룹 같은 부산 대표 기업들도 정치의 희생양이 돼 공중분해 되면서 부산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 영호남 균형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투자가 이뤄졌던 호남축은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부산과 같은 입지 조건과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까닭에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경부축이 무너지고, 호남축이 뻗지 못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수도권 일극체제가 급속히 고착화돼 갔다. 부산을 위시한 지역이 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 인재 유출로 소멸 위기로 치닫는 사이 수도권은 거대한 블랙홀이 돼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시청을 비워둔 채 27일 국회 앞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의 조속 처리를 촉구하는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특별법은 부산을 세계적인 물류, 금융, 첨단산업 중심지로 도약시켜 수도권에 대응하는 새로운 성장축이자, 남부권의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한 특례를 담고 있다. 고령화와 일자리 감소로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부산으로서는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2029년 가덕신공항 개항을 통한 육해공 복합물류체계 구축 등 재도약을 위한 성장 잠재력도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특별법은 민주당의 무관심과 무성의 속에 연내 처리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확고한 지역적 기반이 된 수도권 일극체제를 이대로 공고화하겠다는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온건한 합리주의자 이미지의 박 시장이 국회 농성이라는 극한 방식을 택한 이면에는 330만 부산 시민의 염원과 울분이 있다. 특별법 제정은 단순히 한 지역의 발전을 위한 특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화를 완화하고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자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다. 50년 전 잘못 내려진 정책 과오를 바로잡고, 대한민국 균형축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출발점이다.
이대로 특별법이 정쟁의 늪에 빠져 유야무야된다면 비수도권 지역민들에게 있어 대한민국은 혹독한 빙하기의 연속일 뿐이다. 박태우 사회부 차장 wideneye@busan.com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