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완수를 위해 '농땡이'를 허하노라?
■ 직관의 폭발 / 이와다테 야스오
AI가 인간 논리·분석력 앞지르면서
인간에겐 직관·창의적 발상 더 중요
집중 대신 빈둥거릴 때 직관력 커져
<직관의 폭발> 표지.
당신은, 혹은 당신의 아이는 산만한가. 그렇다면 축하드린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냐. 요즘 같은 집중 만능시대에 산만함 따윈 ‘절대악’ 같은 존재이거늘. 분야를 막론하고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수다. 집중력 향상 학습법과 관련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집중력을 높이는 음식(그런 게 있기는 한 건가)도 인기다. 그런데 산만함에 축하라니….
그러나 미국 뇌신경외과학회 논문 최우수상 수상자이자 일본 내 뇌과학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뇌신경외과 전문의 이와다테 야스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책 <직관의 폭발>에서 “집중 강박에 빠져 있다면 뇌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뇌의 양대 시스템인 ‘분산계’와 ‘집중계’의 작동 방식 때문이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전두엽과 두정엽의 외측 대뇌피질로 구성된 ‘중앙 집행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며 집중계 시스템이 작동한다. 반면 분산계 시스템은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거나 직관을 발휘하는 일을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시스템이 결코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집중할수록 집중계 시스템이 켜지고, 대신 분산계 시스템은 꺼지면서 우리의 직관을 방해한다.
여기서 잠깐. 집중력을 향상하는 것보다 굳이 직관을 발휘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직관이라는 것이 흔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데도 말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게 즉흥적이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에 직관이야말로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를 AI로 설정하고, 인간이 AI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혈안이 된 느낌이다.
책은 직관의 대표적 예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중 제4국에서 이 9단의 78수를 든다. 흔히 ‘신의 한 수’로 불리는 이 수로 인해 당시 이 9단은 죽은 줄만 알았던 상변의 백돌들을 되살렸고 결국 불계승했다. 저자는 AI는 절대 이러한 수를 생각해낼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작 이 9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묘수는 논리와 분석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와 분석은 AI가 더 잘하지만, 직관만큼은 인간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분산계 시스템을 원활히 작동시켜 직관력을 키울 수 있을까. 저자는 “집중에서 해방되어 멍하니 있을 때 분산계가 가장 활발해진다”고 조언한다. 멍 때리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분산계에서는 기억의 통합과 정리가 바쁘게 진행된다.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편하며 직관이 발휘되기 적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뇌는 쉴 때와 목적을 가진 활동을 할 때 에너지 소비 차이가 약 5%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고가 무의식중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직장 내 업무 효율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쉬는 시간을 없애면 창의성과 업무 성과가 모두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우리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 과제를 더욱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뇌가 최적하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집중력에 집착하던 우리의 뒤통수를 완벽하게 때리는 책. 내 뒤통수도 조금 뻐근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딴짓을 하는 것에 대해 더이상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전 세계의 모든 고용주가 이 책을 싫어할지도. 이와다테 야스오 지음/류두진 옮김/웅진지식하우스/248쪽/1만 8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