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굿바이 카터
미국에서 최고 직업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이들은 퇴임 후 취미 생활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프로야구를 관전하고 골프를 치고 동네 주민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도 즐긴다. 재임 중 일들을 정리해 회고록을 쓰고 업적을 모아 대통령 도서관을 짓는다. 회당 수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받고 외부 연설을 다닌다. 국민들은 그런 퇴임 대통령을 깍듯이 예우한다. 도로 공항 건물 군함 등에 그들 이름을 붙이는 것도 기념과 예우의 의미다.
미국인이 그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전직이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다. 그 역시 퇴임 후 회고록 〈신념을 지키며〉를 쓰고 애틀랜타에 대통령 도서관과 카터센터를 지었다. 하지만 그를 최고로 만든 건 검소하고 봉사하는 삶이었다.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에 참여해 공사 현장에서 직접 망치를 들고 못을 박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국제 분쟁지역을 찾아 평화 중재자로 활약하며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우리에겐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북미 협상의 길을 연 일이 기억에 또렷하다.
카터의 존재감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더 빛났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국장으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등 전현직 대통령이 함께했다. 생전 카터를 최악의 대통령이라 비판한 트럼프도 이날은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다. 지난 대선 기간 트럼프를 ‘민주주의의 위협이자 적’이라 했던 오바마는 트럼프와 옆자리에 앉아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언론은 세상을 뜬 카터가 살아 있는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했다.
장례식 하이라이트는 카터보다 18년 먼저 세상을 떠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추도사였다. 공화당 소속의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터와 맞붙어 패배했다. 정치적 경쟁자였지만 둘은 퇴임 후 깊은 우정을 나누며 생전에 서로의 추도사를 써 놓았다. 포드의 아들이 대독한 솔직하고 유머 섞인 추도사에 전현직 대통령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장례식장은 정파를 초월해 존중과 유머가 넘치는 축제의 장이 됐다. 바이든은 추도사를 통해 카터가 가진 훌륭한 인격이 우리가 가진 직함이나 권력 이상이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물론 인격이 배제된 권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