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최초 통제영’ 논쟁…경남 통영 vs 전남 여수 무슨 일?
통영 중심에 자리잡은 삼도수군통제영 복원지. 부산일보DB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최초의 본영이 어딘지를 놓고 경남 통영시와 전남 여수시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통영 한산도 진영이 최초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는데, 최근 여수 지역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최초는 여수’라며 여론전에 나서면서 논쟁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13일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년) 한산대첩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이듬해 해로 방어 최대 요충지인 통영 한산도로 군영을 옮겼다. 남해안 서쪽에 치우쳐 방어에 취약한 전라좌수영의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후 초대 통제사로 제수돼 3년 8개월간 한산도에 주둔하며 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통솔했다. 학계는 이를 근거로 한산 진영을 최초 통제영으로 인정해 왔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1592년~1598년) 동안 군중에서 쓴 <난중일기>를 비롯해 <이충무공전서>, <두룡포기사비>, <통제영충렬사기> 등 현존하는 임진왜란 사료와 근현대 고증자료 대부분도 ‘한산도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역시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라고 기술해 놨다.
그런데 지난해 10월과 11월 전남도의회와 여수시의회가 ‘빼앗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여수 역사바로잡기 촉구 결의안’을 연거푸 채택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역사 왜곡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들은 △임진왜란 무렵에는 통제영이란 용어가 없어 ‘본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 △제1대 이순신부터 제4대 이시언 통제사까지 전라좌수사로 하여금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도록 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산도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임시 전초 전진기지로 병참, 군수물을 거의 모두 본도인 전라도에서 충당했다는 주장 등을 들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은 전라좌수영 본영인 여수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료 근거가 분명함에도 통영에서는 이순신 장군 호국정신 혼이 깃든 여수 역사를 배제하는 역사 왜곡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전라좌수영 국가문화유산 사적지 지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사)여수종고회, (사)여수여해재단, (사)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 등 시민단체가 가세해 학술대회를 열고 범시민 서명운동, 표지석 건립, 관계기관 청원을 통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통영 중심에 자리잡은 삼도수군통제영 복원지. 부산일보DB
‘최초 통제영’ 타이틀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처음은 아니다. 1983년 발표된 여수대학교 문영구 전 교수의 <임진왜란 중 여수 전라좌수영은 통제영> 논문을 계기로 여수를 중심으로 역사바로잡기 운동이 일었다. 2021년에는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이듬해 범시민연대도 출범했다. 이후 각종 세미나와 지방의회 공론화 시도가 잇따랐고 지난해 전남도까지 정책토론회를 열어 힘을 싣는 등 여론전을 부추기고 있다.
지자체 간 갈등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그동안 맞대응을 자제하던 경남도와 통영시도 최근 전략을 수정했다. 특히 올해 여수 진남관 재개관에 맞춰 이런 움직임이 더 강경해질 것으로 판단해 대응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다만, 연구자 관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학술적 검증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정치권, 시민사회와 연대해 지역 사회 공감대 형성과 객관적 사실 알리기에 집중한다.
통영시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논란 거리조차 안 되지만, 상대가 저렇게 나오니 뒷짐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더는 재론의 여지가 없도록 이번에 확실히 마침표를 찍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