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어른은 아무나 되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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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1대 임금 영조가 1744년 51세가 되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조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영조가 당시 기로소에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로소는 치사기로소(致仕耆老所)의 줄임말로, 연로한 고위 관료의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관이었다. 원칙적으로 정2품 이상 전·현직 문관으로 70세 이상이어야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예였다. 관료로서 명예에다 장수의 복까지 동시에 누리는 인사들의 모임이니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영조도 스스로 도학군주라 자부하며 욕심을 냈던 것이다.

신하들이 만류해도 영조는 “기로소에 이름 올리는 게 지극한 소원”이라거나 “늙고 고질병이 있어 기다릴 수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논란에도 영조는 기어코 기로소 입소를 관철시켰다. 당연히, 뒷말이 있었다. 우의정 조현명이 간언했다. “말씀이 너무 번다합니다. 신 등이 바라는 바는 오직 성상께서 삼가는 마음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천성을 바르게 하는 방도를 극진히 하는 것입니다.” 기(耆)는 ‘나이가 많고 덕이 두텁다’(年高厚德)는 뜻. 조현명의 간언은 “영조, 당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느냐. 제 분수 모르고 탐욕 부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질타였다.

흔히 말한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고. 곱게 늙는다? 짐작건대, 앞으로 세상의 주인이 될 젊은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늙는 것일 테다. 분수를 모르고 자기만의 옛 경험과 관성을 고집하며 젊은 세대의 앞날에 폐를 끼치는 건 추한 늙음이다. 추하게 늙은 이는 어른이 아니라 그냥 늙은이일 뿐이다.

최근 한 노(老) 가수가 은퇴 공연을 하면서 “어디 어른이 얘기하는데 XX하고 있어”라며 격한 말을 쏟아냈다. 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한 자신의 입장 표명에 세간의 비난이 쏟아지자 나름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어른이라 여기는 듯한데, 50여 년 쌓은 가수로서의 입지는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곧 사표로서 어른임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나이 먹을수록 귀가 너그러워지면서 세상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도 높아지는 것 같지만, 실상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집과 독선만 남은 늙음, 다른 사람에 앞서 나 자신에게 먼저 저어되는 바다. 기로(耆老, 존경받는 노인)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기로(棄老, 버림받는 노인)는 되지 말아야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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