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설날 연하장 한 장 어때요?
강성할 독자여론부장
탄핵과 불황에 지칠대로 지친 요즘
양 극단 갈려 절충 타협마저 사라져
배려와 정성이 담긴 연하장 더 그리워
사랑담긴 연하장이 세상 잠시 녹이길
새해 사무실과 집 책상 서랍에서 물건을 정리하다 예전에 받았던 연하장 여럿을 발견했다.
아직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이 보낸 연하장도 있다. 또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분의 연하장도 있고, 한때 가깝게 지냈던 분의 연하장도 있다. 연하장은 보낸 이의 고운 마음까지 느껴져 오랜 세월 소중하게 간직한다.
오래 전 연말 성탄절이 다가오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를 빌려 축하 카드를 직접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을 앞두고는 다양한 연하장을 보냈다.
일반 편지와 달리 연하장에는 복을 비는 그림과 60갑자에 따라 그해를 상징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새해를 축하하고, 받는 사람의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글로 써서 전했다.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때문에 연말연시가 되면 문구점과 서점, 우체국이 북새통이었다. 깜찍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다양한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 연하장을 받으면 그동안 소원했던 마음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요즘말로 썸타는 이성으로부터 처음 받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세상을 다 갖는 느낌을 받았다.
연하장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잠깐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 속에만 감춰뒀던 사랑을 보냈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에 안부를 묻지 않고 지내던 사람도 챙기게 됐다. 반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이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잊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만큼 소중한 일이다. 만나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에 큰 업적을 이룬 이가 보낸 연하장에 적힌 힘 있는 격려와 응원 글귀는 새해를 시작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보내는 연하장은 세상을 살아가는 따듯함이 되어준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해 말과 설을 앞둔 요 며칠 새 연하장이 크게 줄었다. 대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카톡이 요란하게 들어오고 있다. 보내기도 쉽고 받기도 쉽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설 연휴 잘 보내라' '잘 사느냐' 등. 설날을 앞두고 하루 수십 건의 문자나 카톡이 온다. 나 혼자에게만 보내는 정성이 느껴지는 문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상에서 찾아서 붙인 사진이나 문구들이다. 이들을 계속 보고 있자면 '영혼 없는 광고'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세상이 너무 불안하다. 여기저기서 불황에 따른 자영업자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건설 경기는 얼어붙어 멈춰진 사업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갈려 타협과 절충이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도무지 끝을 알지 못하는 반목과 질시의 터널을 벗어나게 할 묘책은 없을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장만하고 정성스레 글을 쓰고 이를 우체국에 가서 부쳤던 한 장의 연하장이 답이 될 수는 없을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양보하고 정성을 쏟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서로 양보할 수도 있고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에 가까운 상상을 해본다.
어떤 문자를 받았을 때 마음이 환해질 것인지 떠올려 본다. 따지고 보면 그 문자는 새해 다짐이나 각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멋진 문구의 메시지를 받으면 은은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모두 연하장 한 장을 써보자.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한 줄이라도 적어보자. 아름다운 문구라도 좋고, 관심을 표현하는 문구라도 좋다. 받는 사람이 미소를 짓는 내용을 담아보자. 다른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이 이 얼어붙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나는 연하장을 사러 간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데울 욕심에 가족, 친지, 친구, 그동안 소원했던 오랜 벗 모두에게 연하장을 보낼 작정이다. 누구라도 내 연하장을 받고 이 엄중한 세월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길 기대하면서.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