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독을 품은 언어
말(言)은 사람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성대중 〈청성잡기〉) 여기에 비춘다면, 말 많은 사람은 십중팔구 알맹이가 없거나 줏대가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고 했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는 법.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침묵 속에 자리한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남에 대해 말하려면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판(批判)’에서 ‘비(批)’라는 말의 의미가 그렇다. 손(手)에 놓고 견준다(比). 사물을 손바닥에 두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말이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비판이다.
바야흐로 말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말(글)이 퍼지는 속도는 지금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의 경쟁력을 넘어 조직과 공동체의 운명까지 좌우할 만큼 말의 힘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강력해졌다. 이를테면, 칼처럼 휘두르는 날카로운 혀는 분열과 파탄을 낳는 것이다. 그런 역사적 사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의 언어는 어떠한가. 사회와 정치의 영역에서 막말, 비방, 독설, 편견으로 오염된 지 오래다. 요즘처럼 극단의 양상을 보인 때도 없는 듯하다. 내란 사태 이후 계엄을 옹호하는 세력의 인터넷 댓글이 대표적이다. ‘찢재명’ ‘까불당’ ‘좌비시’ ‘계몽령’ 등의 표현은 차라리 양반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저질 언어의 조합들이 뉴스 댓글을 도배한다.
문자의 쓰임이 분열, 증오, 망상, 폭력을 매개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익명성에 숨어서 뿌려대는 극악의 언어 테러. 그러니까 말 자체가 최악의 폭력으로 기능한다. 그 배경에 극우 유튜버들이 있다. 이들은 댓글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지목된 마당이다. 심지어 이런 여론 선동에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 집권여당까지 연결돼 있다.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급기야 법원을 습격했다는 뉴스다. 말보다 몸을 쓰는 풍경은 익숙하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조폭, 시정잡배, 양아치들이 그리한다. 논리는 없고 주먹이 먼저다. 12·3 계엄 선포 자체가 물리력을 앞세운 폭력이었다. 대통령도 그렇고 지지 세력도 그렇고, 그들에게는 말과 폭력이 동의어다. 입만 열면 분열과 증오의 언어요, 입 바깥에서는 폭력을 쓰는 이들. 말하는 법부터 제대로 다시 가르쳐야 하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