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은행원 2000명 짐 싼다
최근 5년간 5000명 희망퇴직
오프라인 점포 급감 등 주원인
대상 연령 30대 중후반 확대
금융 소외·퇴직금 잔치 비판도
오는 설 명절을 전후로 최대 2000명에 달하는 은행원이 회사를 떠난다.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올해 설 명절을 전후로 최대 약 2000명에 달하는 은행원이 회사를 떠난다. 오프라인 점포가 빠르게 사라지는 데다 두둑한 퇴직금을 받고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와 달리 희망퇴직 대상이 30대 중후반까지 낮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과 BNK부산은행 등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지속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있다.
먼저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희망퇴직을 신청받은 결과 총 647명이 회사를 떠난다. 신청자 기준을 기존 1972년에서 1974년으로 확대했고, 특별 퇴직금을 월 급여의 18~31개월 치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국민은행에 앞서 신한은행에서도 희망퇴직 인원이 541명으로 확정됐다. 특히 신한은행은 올해 희망퇴직 대상자를 30대 후반인 1986년생까지 늘렸다. 두 시중은행에서만 올해 1000명이 넘는 은행원이 회사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희망퇴직을 신청받았고, 오는 31일 최종 규모를 확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희망퇴직 인원은 4대 시중은행에서만 총 2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은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연령에 따라 최대 24~31개월 치 평균 임금을 받는다. 우리은행의 경우 정규직 입행 후 10년 이상 재직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예년과 비슷한 최대 19~31개월 치 평균 임금을 특별 퇴직금으로 제공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부산은행도 지난해 12월 4일부터 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상은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다.
은행들은 인력 효율화를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비대면·디지털화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은행 점포가 빠르게 축소되는 여건을 감안한 조치다. 모바일 뱅킹이 확산하며 비싼 임대료를 내며 영업점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 정부의 신규 채용 주문도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 과정에서 비대면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등 금융취약층의 불편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가 심한 지역일수록 은행 점포 접근성이 낮은데 희망퇴직 가속화와 점포 축소로 금융 소외가 더 심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점포 이용을 위해 소비자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부산·서울 등 대도시는 1km를 넘지 않았지만, 경북·전남 등은 최대 27k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주요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과 부산은행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임직원 수는 5만 9796명으로 5년 전인 2019년 9월 6만 4580명보다 4794명 감소했다.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은행원들이 회사를 떠난 셈이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 임직원이 지난 5년간 1523명 줄어 가장 많이 감소했다. 하나은행(1224명), 신한은행(977명), 우리은행(834명), 부산은행(236명) 등이 뒤를 이었다.
40대 전후로 은퇴를 목표로 한 이른바 ‘파이어족(조기 은퇴족)’이 늘어나는 사회적 현상이 나타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주요 은행들이 매년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의 연령을 낮추고 있는데 막대한 퇴직금을 보상으로 주는 만큼 이를 받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은행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내 16개 은행이 지난 5년간 희망퇴직자들에게 법정퇴직금을 제외하고도 더 얹어준 돈이 6조 5000억 원을 웃돈다. 4대 시중은행과 부산은행의 경우 1인당 평균 4억 원에 육박하는 돈을 희망 퇴직금으로 받았다.
은행권의 희망 퇴직금이 타 업권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인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한 고금리 장기화 덕분에 연일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것이 원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이자수익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시중은행의 퇴직금 잔치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며 “수익의 사회 환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