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행의 변신은 '무죄'[데스크 칼럼]
박석호 서울정치부 부장
경제수석 땐 정무적 판단 회피 전형적 관료
'헌법재판관 2명 임명' 절충안 통해 파국 막아
협상·조율 못하는 여야 대신해 '정치력' 발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일 때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최 수석이 현지에서 정상회의 성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을 가졌는데 그 때 기자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2012년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 사업 실패로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자 예금자 3만 8000여 명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캄보디아 교민들은 윤 대통령 방문에 맞춰 “원리금 회복을 위해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현수막을 걸고 여론전을 벌였다. 윤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 시절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는데 이 때문에 교민들은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더욱 좋은 기회로 봤다.
최 수석은 ‘교민들의 호소에 대통령실은 어떻게 대응할지’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번 같은 다자간 정상회의에서 언급할 내용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식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참모라면 재외국민들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당시 기자의 생각이었고, ‘역시 경제관료 출신이어서 정무적 판단은 못하는구나’라고 아쉬워했다. 그런 최 수석이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대통령의 부재에 따라 임시 관리자 역할만 하려는데 갈수록 난제가 쌓여가고 있다.
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2차 내란특검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고,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사태 등 극단적 세력이 벌이는 사회 분열상을 수습해야 한다. 바깥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른 국가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최 권한대행에 협력하기는커녕 상반된 요구를 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한 것을 놓고 협공에 시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권한을 침범한 반헌법적 행위이자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드는 부적절한 처사”(강유정 원내대변인)라고 비판하며 탄핵까지 거론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 재판관 선출 권한 등이 침해됐다”며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반면 여권의 ‘빅마우스’ 홍준표 대구시장은 “권한대행의 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하는건 웃지 못할 코미디”라면서 “기재부 장관의 ‘대통령 놀이’는 참 기막힌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여야는 그런 식으로 최 권한대행을 몰아붙이다가도 필요하면 또다시 그를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때 다시 한번 샌드위치가 된 것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민생정책 신속집행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는 “경호처가 총기를 들고 불법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를 왜 방치하느냐”며 “입으로는 경제 안정 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최상목”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직무 유기 혐의로 최 권한대행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시민 안전이 중요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좌우되는 문제인 만큼 적절한 조치를 요청한다”고 정반대의 주문을 했다.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에서 ‘셋 중 두 명만 임명’하는 절묘한 대안을 택했다. 여야 온건파들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는 뒷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 체포 국면 때는 ‘국가기관 사이의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앞세워 최악을 피했다. 여야 정치인들은 최 권한대행을 ‘비겁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그런 정치인들이 더 비겁해 보인다.
최악을 ‘차악’으로 만들고, 극단적 상황에서 절충안을 찾는 건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인들이 협상과 조율을 통해 파국을 막는 해법을 찾지 못하니 경제관료 출신인 최 권한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여야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원래 그런 결론은 없다.
경제수석 때 원칙만 내세우는 뻣뻣한 모습에 실망했던 기자는 국가적 위기에서 드러난 최 권한대행의 변신이 놀랍다. 양쪽으로부터 욕 먹고 있는 걸 보니 권한대행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대통령 놀이’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