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10만 년의 봉인'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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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 기껏해야 100년 안팎의 수명을 누리는 인류에게 10만 년은 가량조차 어려운 시간이다. 현생 인류가 출현한 시기가 4만 년 전이고, 신석기 문명으로 인류가 본격적인 번영의 길로 접어든 게 1만 년 전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의 전환을 맞이한 때가 불과 4000~5000년 전의 일이다. 인류사에 특필할 만한 일이 거의 10만 년 안에 있고 보면, 10만 년은 인류가 경외심을 품을 만한 정도로 긴 시간인 셈이다.

최근 유럽 대륙의 북단인 스웨덴에서 100년 정도의 짧은 삶을 영위하는 인류가 10만 년의 긴 세월을 염두에 둔 역사적인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을 앞으로 10만 년간 ‘봉인’할 수 있는 영구처리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완공한 핀란드에 이은 두 번째 사례다.

처분장은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약 150㎞ 떨어진 포르스마크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약 19억 년 된 암반의 지하 500m 깊이에 60㎞ 길이의 터널을 뚫어 여기에다 약 1만 2000톤 규모의 사용후핵연료를 5m의 구리 캡슐에 넣어 보관하는 방식이다. 이 시설은 2030년대 후반부터 일부 가동을 계획하고 있지만 완공은 2080년께나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단단하고 깊은 땅속에 10만 년간 봉인하는 시설을 만드는 이유는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의 맹독성 때문으로, 이를 자연 상태의 우라늄 수준까지 낮추는 데 대략 10만 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이 고려됐다. 스웨덴 원전은 1970년대부터 가동된 뒤 현재까지 약 8000톤 이상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배출했는데, 당국은 일찍부터 처분장 부지 선정과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핵폐기물 관리 회사가 처분 허가를 신청했을 때가 2011년이라고 하니, 그 준비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한 인간의 시간으로는 막막한 10만 년 세월을 상대로 하는 시설물인 만큼 그만한 준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다만 핵폐기물 배출이 목까지 차올라 한계에 이른 상황인데도 처분장 건설의 실마리조차 아직 찾지 못한 우리 현실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맹독성의 핵폐기물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격인 부울경 주민은 더 오죽할까 싶다. 10만 년이라는 시간의 두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까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것인지….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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