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겨울 좌천동
이성희(1959~)
저녁이 긴 외투를 끌고 모퉁이를 돌고 하늘은 흐린 겨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이 골목길을 걸을 수 있다면 저 작은 보안등 불빛 하나가 어떻게 낡은 벽의 균열들을 살아서 숨 쉬게 하는지, 벽들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그리운 이야기를 꿈꾸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말라붙은 담쟁이덩굴에 불빛이 닿으면 황금색 수액들이 마른 줄기로 흐르며 조심히 연금술의 비결을 벽에 쓰는 것을, 어느새 겨울바람이 지우는 것을, 그 사이에 고단한 겨울의 하루를 견딘 집들이 하나씩 내밀한 내면을 켜고 발광체가 되고 있는 것을 말이지요.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2012) 중에서
이성희 시인은 철학자입니다. 시와 철학의 멀기만 한 간극을 이렇듯 이어줍니다. 산비알 좌천동의 골목길에서 낡은 벽의 균열들이 작은 보안등 불빛 하나로 황금색 수액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금술은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입니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세계. 존재함이 존재해 나감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꿈, 아무리 고단해도 사람들은 저녁 창문들의 불빛처럼 내면을 밝힙니다. 인간 정신의 원초적인 조건인 어둠과 빛. 작은 불빛 하나로도 우리들의 꿈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 겨울 좌천동 좁은 골목들을 당신과 함께 어슬렁거려보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균열을 채워줄 불빛을 찾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