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일신기독병원 명암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동구 좌천동 일신기독병원.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일신산부인과로 불렸던 부산 최초의 여성·영유아병원이다. 이 병원은 30여 년 전 필자의 딸과 아들이 2년 터울로 고고성을 울린 곳이다. 그때 분만실 앞에서 장시간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서성대다가 아내가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낳자 안도감과 기쁨에 눈시울을 붉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산 출신이라면 본인이나 가족, 친인척이 일신기독병원과 얽힌 사연 한두 개쯤은 갖고 있을 듯하다. 1967년 일신기독병원에서 태어난 한 남자는 1995년 이 병원에서 득녀하고, 그 딸이 지난해 같은 병원에서 딸을 낳았다고 한다. 3대에 걸친 인연이 있을 만큼 지역민에게 친숙하다. 부산 시민들 중에는 우스갯소리로 일신기독병원이 고향이라고 얘기하는 이도 많다. 이곳이 출생지란 뜻에서다.

일신기독병원은 호주인 제임스 맥켄지 선교사의 두 딸 매혜란(헬렌)·혜영(캐서린) 씨가 1952년 일신부인병원을 세운 게 시초다. 1910년 입국한 맥켄지 부부는 30년가량 경남 지역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선교활동을 펼치던 중 부산에서 매 씨 자매를 낳아 키웠다. 이 자매는 호주 장로교 한국선교회의 도움으로 부인병원을 운영하며 1976년 호주로 돌아가기까지 모자보건 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두 사람은 국내 의료 환경이 열악했던 시기, 선진 의술과 박애주의로 숱한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을 구했다. 당시 부족했던 여성 의사와 간호 인력 양성에 기여한 공로도 크다. 자매의 업적은 부산시교육청이 2022년 9월 지역 위인 12명을 선정해 아동 교육용으로 펴낸 〈부산을 빛낸 인물〉에 송상현 동래부사, 장기려 박사 등과 함께 소개돼 있다.

1982년 현재 명칭으로 바꾼 병원은 1999년 화명일신기독병원(북구 화명동), 2018년 정관일신기독병원(기장군 정관읍) 등을 잇따라 개원하며 성장해 왔다. 지난 18일 일신기독병원의 30만 번째 아기 출생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려 설립 73년 역사를 빛냈다. 21일 기준 누적 출생아 수는 30만 54명.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인구가 세 번째 많은 사하구 29만 2400명을 웃도는 규모다.

매우 아쉬운 일도 있다. 지난해 2월과 6월 각각 정관·화명일신기독병원이 분만 진료를 중단했다. 합계출산율 0.66에 그친 부산의 극심한 저출생과 젊은 층 유출 현상 때문이다. 문을 닫는 산부인과 의원도 늘고 있다. 이 분야는 필수의료인 만큼 일신기독병원 본원의 분만 업무가 멈추는 경우는 없길 바란다. 출산 인프라 붕괴를 막는 것도 저출생 극복에 급선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