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혀 깨물어 옥살이 한 최말자 씨… 60년 만에 재심
중상해죄로 유죄 선고, 6개월 구치소 생활
변호인 "불법체포·구금 면밀히 검토해 달라"
2020년 5월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는 이날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78) 씨의 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재욱)는 22일 최 씨의 중상해 혐의 관련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사건 심문기일을 열었다.
이날 최 씨 변호인은 “이번에 재심 기각 결정 파기 사유인 ‘불법체포·구금’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며 “재심 재판 전 제출된 서면과 증거들도 자세히 검토해 빠른 재심 결정을 내려 달라”고 밝혔다.
검찰은 “대법원은 재심 청구인 진술 그 자체가 재심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재심 청구인의 진술에 부합하는 당시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본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며 “이러한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존중해 검찰은 재심 개시 의견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최 씨의 심문을 진행해 사건 당시 진행된 수사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청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변호인들이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내용 중에는 소년법 위반과 권리행사방해죄 성립, 불법체포·감금, 협박 등 여러 가지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며 “가장 중점적으로 볼 부분은 불법체포·감금 부분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변호인 측은 자료 낼 것이 있으면 10일 이내에 제출해 주시고, 재심 결정은 그 이후에 내리겠다”고 설명했다.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밤길을 걷던 중 노 모(당시 21세) 씨와 마주쳤고, 노 씨는 최 씨를 덮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최 씨는 입안에 들어온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노 씨의 혀가 1.5cm 정도 잘리자, 최 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중상해 가해자로 몰렸다.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지만, 정작 노 씨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최 씨는 1965년 1심 재판에서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씨에겐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구속수사를 받은 최 씨만 6개월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셈이다.
최 씨는 사건 56년 만인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등법원은 “반세기 전 사건을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이 변화된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최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