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 연초부터 해야
노유진 한국도로교통공단 남부운전면허 시험장 단장·공학박사
우리 사회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그리고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14.9%가 65세 이상인 ‘고령 운전자 시대’가 되었다. 2017년 ‘고령화 운전자 시대’가 도래한 이후 7년 만에 맞이한 것이다. 이제 ‘초고령 운전자 시대’도 멀지 않았다. ‘초고령 운전자 시대’에 걸맞은 운전면허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매년 연말이면 운전면허시험장은 적성검사로 북새통을 이룬다.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간이 운전면허 취득 후 10년째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65세 이상은 5년째 되는 해,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는 3년째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간이다. 그래서 모두가 12월 31일 마지막 날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연말에는 75세 이상의 고령자와 방학을 맞은 운전면허를 처음 취득하려는 젊은이들까지 복잡하고 무질서한 이 대열에 합류하여, 고함을 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생업에 바빠서 미루다 마지막 날에 적성검사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극히 일부 운전자는 IT 강국에서 왜 이렇게 후진국처럼 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며 담당 직원에게 분풀이한다.
2017년 고령화 운전자 시대의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2만 6713건이었다. 잠정적이지만 7년이 지난 고령 운전자 시대의 교통사고 건수는 4만 1808건이나 발생했다. 56.5%나 증가한 수치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달해도 운전은 운전자가 하는 만큼 고령 운전자의 신체 노화에 따른 운전 능력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고령 운전자가 ‘스스로 운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교통사고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
2024년 남부운전면허시험장에 음주, 마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시적성검사자로 통보받은 분들은 1031명이다. 이 중에서 치매로 통보받은 분들이 745명이다. 최근 수시적성 검사자의 73% 이상이 치매 환자분들이다. 치매로 인해 장기요양보험으로 국가에서 혜택을 받는 분들은 운전면허시험장의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등록이 되지만 이마저도 의사 소견서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운전을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이런 분들이 언제든지 교통사고의 잠재적인 위험을 알면서도 지금도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운전자가 스스로 운전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자가 진단 시스템, 조건부 운전면허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지금과 같이 연말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적성검사로는 백약이 무효하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은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는 연말이 아니라 연초에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도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본인의 신체 능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컨설팅도 받고 ‘가상현실 자가 체험’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