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공교육 신뢰 회복, 사회적 연대부터
이정열 정관고 교사
대전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온갖 정책과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교사들에 대한 정신건강 검사, 강제 휴직, 복직 시 심사 강화, 전담 경찰관 배치 확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공통적으로 교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 위험군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교사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고 공교육 신뢰도를 더욱 끌어내리는 역효과만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시민의 덕성은 연대와 배려, 공감하는 경험 속에서 함양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에서부터 통제와 배제에 익숙해지고 교실에서 만나는 스승의 정신질환을 의심하며 생활하게 되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어쩌면 예외적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어렵게 일궈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특정 장소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통제와 감시 체제를 강화하고 사회구성원의 직업을 빼앗을 수 있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묻지 마(이상 동기)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해당 장소와 같은 종류의 기관에 상주하는 경찰관을 배치하고, 범죄자와 같은 직군에 정신건강 검사를 도입한다면 통제와 감시 기반의 공안 통치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법과 제도가 만드는 흐름은 공적 영역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상대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려 할지도 모른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나름의 사회적 좌절과 고립을 겪고 있었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회와 남탓으로 돌리며, 그러한 분노는 정작 힘없는 약자들을 상대로,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면에 벽을 쌓고 더욱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으며,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거나 분노를 식혀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지 못했다.
당장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민주주의와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입법을 성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법과 온갖 제도 남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관료적 행정만능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단숨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도는 없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교사들을 불신하는 법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상호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연대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이 겪는 분노와 좌절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문화적 보호망을 촘촘히 구축해 나가야 한다. 답답하고 느려도 이게 가장 확실한 길이다.
공교육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적과 대학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지양하고, 사회적 약자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좌절을 겪어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을 길러주고, 경쟁에서 앞서지 못해도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 서로의 믿음과 연대를 통해 자란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공교육은 상대평가 성적을 올리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