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복군 30주년 기장군
부산 해동용궁사는 수려한 바닷가 풍광을 자랑하며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는 속설로 유명하다. 이 절은 지난 7일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여행협회가 선정해 발표한 ‘한국 절경 30선’의 하나로도 꼽혔다. 사찰이 속한 행정구역인 기장군은 해동용궁사 등의 인기 덕분에 내·외국인이 많이 찾는 ‘핫플’로 떠올랐다.
기장(機張)이라는 명칭은 국내 지명이 대개 그러하듯 자연환경에서 유래했다. 기장 지역 주산인 일광산 아래로 비단이 걸려 있는 모습의 베틀(機)이 펼쳐진(張) 형세란 뜻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이 같은 땅의 모양새에서 이름을 딴 기장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변방으로 치부된 기장은 공양왕 3년(1391년)에야 독자적 행정단위인 기장군이 됐다.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해안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해져서다. 기장군은 조선 태조 3년(1394년), 전국 8도 개편에 따라 기장현이 된다. 선조 32년(1599년)엔 기장 남쪽은 이웃 동래현, 북쪽은 울산군에 각각 병합됐다가 광해군 9년(1617년)에 기장현으로 복원되기도 했다. 이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개혁 때 동래부 산하 기장군으로 바뀌었다.
기장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폐지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해 3월 인구 1만 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동래군에 편입된 것. 지명이 생긴 이후 1157년, 처음 군이 된 지 523년 만에 사라진 게다. 1973년 기장은 동래군이 폐지되는 바람에 생활권이 다른 경남 양산군에 통합되는 아픔을 겪었다. 기장 주민들은 각종 관공서가 몰려 있는 양산읍을 오가는 데 하루 종일 걸리는 등 불편이 많았다. 40㎞가 넘는 기장~양산 간 비포장도로에 왕복 버스가 하루 1대뿐이라 부산을 경유하면서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컸다고 한다. 기장은 1995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부산으로 편입됐다. 이때 81년 만에 기장군으로 복원돼 이름을 되찾았다. 부산 편입이나 복군을 촉구한 주민 운동이 이뤄낸 성과였다.
기장군청은 최근 복군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장군 인구는 30년 전 7만 명에서 현재 17만 5000여 명으로 늘었다. 기장은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부산에서 보기 드물게 인구가 증가세에 있다. 정관·일광신도시 개발과 산업단지 신설의 영향이다. 게다가 오시리아관광단지 조성, 카페 급증, 잇단 고속도로와 동해선 고속철 개통에 힘입어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며 활력이 넘친다. 눈부시게 성장한 기장군 30년 역사가 글로벌 허브도시로 재도약하려는 부산에 활력소가 되면 좋겠다.
강병균 대기자 kbg@
강병균 대기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