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항만 거버넌스에 정답은 없다
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컨테이너 부두 운영 주체 제각각
각국 정부 기관·민간 회사 혼재
공공성·통합 관리 vs 효율·전문성
지역 특성 담겨 획일적 적용 곤란
몇 년 전 한 개발 도상국 항만 관계자들이 부산항을 벤치마킹하겠다며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환대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당혹감이 커졌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가 전혀 담당하지 않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컨테이너 부두(터미널) 운영에 관한 상세한 질문을 쏟아냈고, 우리는 그것이 민간 기업의 영역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항만 당국이 컨테이너 부두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민간 전문 부두 운영사가 부두를 임대받아 운영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효율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방문한 개도국 항만 당국은 민간 기업처럼 컨테이너 부두를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다.
항만 당국은 국가마다, 심지어 한 국가 내에서도 그 조직과 역할, 관할 업무의 범위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이는 각 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이다. 미국은 이러한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LA항에는 자체 항만 경찰이 있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2위 롱비치항에는 그것이 없다. 두 항만 모두 최고 경영자를 시장이 임명하는 반면, 동부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뉴욕·뉴저지항은 주지사가 임명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뉴욕·뉴저지항이 항만뿐 아니라 공항, 도로, 터널까지 관할한다는 점이다. 연간 약 9조 원의 매출 중 공항 및 터널·도로 통행료가 약 5조 원으로, 항만에서 나오는 매출 6000억 원을 크게 웃돈다. 이러한 구조는 교통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지만, 순수한 항만 기능에만 집중하는 다른 항만 당국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항만 당국 역시 공항을 함께 관할하지만, 다른 미국 항만과 달리 최고 경영자가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항만 운영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민주적 거버넌스의 좋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모든 항만에 적합한 것은 아니며, 지역의 정치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그 효과성은 다를 것이라 짐작된다.
미국의 조지아항만 당국은 앞서 언급한 개도국 항만처럼 드물게 컨테이너 부두를 직접 운영한다. 직접 운영 방식은 공공성과 통합적 관리 측면에서 장점을 가질 수 있지만, 효율성과 전문성 측면에서는 도전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서 컨테이너 부두 운영사도 국부 펀드가 운영하여 항만 운영 주체가 국가와 일체화된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이는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가 경제에서 항만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항만 당국이 컨테이너 부두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 집권적 국가 시스템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유럽은 그나마 유럽 내에서 어느 정도 유사한 거버넌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EU라는 공동체를 통해 정책과 규제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럽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대부분의 유럽 항만과 달리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정부 30%, 지자체 70% 지분으로 기업화된 공기업 형태로 운영되어 항만이 상업적 유연성을 가짐과 동시에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항만의 거버넌스는 이토록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항만 당국의 역할과 업무 범위는 이렇게 다양할까? 필자는 그 이유가 항만의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레거시(legacy)’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운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것처럼 항만도 오랜 기간 발전해 왔다. 항만은 타 지역이나 국가와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되기 전부터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고, 각 지역의 특수한 경제·정치·사회적 환경에 맞춰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의 특정 항만이 훌륭하다고 해서 무작정 벤치마킹하여 그 모델을 따라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산항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해외 항만 당국에도 사전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항 방문을 희망하는 해외 항만 당국에 우리 항만의 운영 방식과 역할을 충분히 공부하고 오도록 조언하고 있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더 의미 있는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항만 거버넌스에는 정답이 없다. 각 나라와 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 특성에 맞게 진화해 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양성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모델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