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전쟁’ 반인도적 살상 혐의 … 두테르테 필리핀 전 대통령 체포
국제형사재판소 체포 영장 발부
“증거 없이 살해된 사례도 있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전 대통령이 11일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체포됐다. 지난 9일 홍콩에서 연설장에 도착한 모습. AP연합뉴스
필리핀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2016∼2022년 재임)에 대해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발부한 체포 영장을 11일(현지시간) 집행, 그를 체포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홍콩 방문 뒤 이날 오전 귀국하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필리핀 경찰이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ICC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임기 동안 마약과의 전쟁으로 벌어진 대규모 살상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인터폴을 통해 그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전날 홍콩에서 ICC가 영장을 발부하면 체될 준비가 됐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을 옹호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막내딸 베로니카가 찍어 현지 매체에 전달한 영상에 따르면, 그는 이날 공항에서 전격 체포되자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이냐”라면서 큰 소리로 항의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변호사와 보좌진은 당국이 그를 불법 체포했으며, 경찰에 구금된 그를 면담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허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ICC에 인계돼 조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직후부터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마약 복용자나 판매자가 곧바로 투항하지 않으면 경찰이 총격을 가하도록 해 용의자 약 6200명이 사망한 것으로 필리핀 정부는 집계했다.
이에 비해 ICC 측은 사망자 수가 1만 2000∼3만 명에 이르고 마약과 관련돼 있다는 증거도 없이 살해된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ICC가 2018년 마약과의 전쟁 예비조사에 착수하자 필리핀은 2019년 ICC를 탈퇴했다.
이후 ICC가 정식 조사에 나선 뒤 필리핀은 자체적으로 조사하겠다며 조사 유예를 신청하기도 했지만, ICC는 필리핀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며 조사 재개를 결정했다.
이에 2022년 대선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세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당선된 후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ICC의 조사를 거부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마르코스 대통령 측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이 정치적 동맹을 청산하고 대립 관계로 돌아선 이후 마르코스 정부는 ICC가 인터폴을 통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체포하려 할 경우 협조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왔다. 그는 오는 5월 12일 열리는 총선·지방선거에서 마르코스 측에 맞서 자신의 정치적 거점인 남부 다바오시 시장직을 되찾기 위해 출마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