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에 발목 잡힌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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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 사전 편찬 주도 3인방 고향
대통령·도지사·군수 공약사업 지정돼
국회 상임위 통과 후 예산 전액 삭감
작년 말 사상 초유 감액예산안 '불똥'
의령군 “정국 안정 기다리는 수밖에”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조감도. 의령군 제공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조감도. 의령군 제공

경남 의령군 숙원 사업인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이 여야 정쟁의 풍파에 휩쓸렸다.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가 돌연 사업비가 전액 삭감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속도를 내던 사업이 좌초되면서 지역 내 실망감이 감돈다.

의령군은 민선 8기 주요 사업으로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이하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표준어 중심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옛말과 방언 등 역사적·지리적인 관점에서 한국어를 연구·교육하는 기관을 목표로 한다. 주로 언어(말)문화를 다루면서 한글(문자)만 전시해 온 국립한글박물관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게 의령군의 설명이다.

의령군은 ‘언어 독립운동 1번지’로써 박물관 건립 최적지라 자부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 국어사전인 ‘조선말 큰 사전’을 편찬하고 표준말 제정과 맞춤법·외래어를 통일하는 등 업적을 세운 조선어학회의 핵심 3인방, 이극로·이우식·안호상 선생이 모두 의령 출신이다. 조선어사전 등 한국어 관련 유물 63점도 의령군이 보관 중이다.

의령군 자체적으로 2023년 박물관 건립에 대한 용역을 진행한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 값이 1.17로 나와 경제성(B/C 1 이상)이 있다고 판단됐다. 박물관 건립은 국·지방비 300억 원을 투입해 의령읍 내 전체 면적 5300여㎡, 지상 2층 규모로 밑그림을 그린다.

내부는 각종 사전을 관람할 수 있는 영상·모형·체험형 전시관과 박물관 직업 체험, 조사연구 기관 등으로 꾸밀 계획이다.


경북대학교 백두현 교수가 의령군에 기증한 조선어사전. 의령군 제공 경북대학교 백두현 교수가 의령군에 기증한 조선어사전. 의령군 제공

박물관 건립은 애초부터 군민들 주도하에 상향식으로 추진됐다. 2020년 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국회·도청·의령에서 4차례에 걸쳐 학술발표를 열고 사업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직 대통령·도지사·군수 모두가 공약사업으로 지정하는 성과를 이루며 급물살을 탔다.

이어 의령군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을 설득하면서 건립 사업은 작년에 상임위 문턱까지 넘었다. 당시 본회의 통과도 순탄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여야 간 대치 정국이 이어지면서 박물관 사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정부 2025년 본예산을 야당에서 단독 수정·통과시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감액 예산안이 반영된 것. 의령군 관계자는 “지난해 말 야당에서 감액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의령 국어사전박물관 등 증액분은 모두 미반영 됐다”고 설명했다. 의령군은 올해 추경을 통해 다시 사업비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대치 정국이 이어지는 중이라 일정은 불투명하다.

의령군 지역 사회 내에서도 민심을 외면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의령군이 자체적으로 지역 내에 한국어 고을과 거리를 조성하거나 조선어학회 3인방을 기리는 상징탑 설치 등을 추진해 사업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있다.

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김복근 공동대표는 “지역을 넘어 중앙부처와 국회까지 우리나라 언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사업을 돕고 있는데, 정작 여야 밥그릇 싸움에 발목을 잡힐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현재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저 정국만 안정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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