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인지부조화
“상대방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린 지금 피고인이 확신에 찬 태도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공소사실을 끝까지 부인해 온 것은 ‘인지부조화’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08년 2월 27일 부산지법 제5형사부. 침묵이 흐르던 법정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 피고인석을 한 번 쳐다본 재판장은 낯선 용어를 꺼내 들면서 판결문을 읽어내렸다. 당시 피고인석에는 부산지법 사상 최고위 공무원 피고인이라 불렸던 전 국세청장이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앉아 있었다. 재판부는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명예롭지 못한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의 행동에 대해선 애처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재판부가 언급한 인지부조화는 미국 심리학자 페스팅거가 실시한 실험 결과에서 나온 개념이다. 페스팅거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지루한 작업을 시킨 뒤 두 집단으로 나눠 타인에게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하면서 각각 1달러와 20달러를 보상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자신의 거짓말을 믿는 쪽은 어디였을까. 의외로 1달러만 받은 쪽이 자신은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다. 페스팅거는 참가자가 겨우 1달러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인지부조화 상태이며 결국 인지상태를 적극적으로 바꾸기에 이르는 것이라 해석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간이 이미 구축된 인지상태(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에 따라 인지상태를 재구축하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지난주 날 것 같았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가 다시 한 주를 넘기면서 선고 결과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각하부터 기각과 인용까지 탄핵 심판 결과를 놓고 서로 입씨름을 벌이는 장면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문제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이후다. 어떤 결과든 문형배·이미선 두 헌법재판관의 퇴임 전까지 탄핵 심판 선고는 이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갈라진 국민의 어느 한쪽은 심각한 인지부조화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인지부조화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극복하려면 행동을 바꿔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던 생각을 재구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인간은 자신이 구축해 온 생각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자신이 한 행동에 따라 생각을 재구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