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vs 이민법, ‘추방 위기’ 한인 학생 트럼프에 소송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콜롬비아대서 반 가자전쟁 시위
영주권자 정 씨에 ICE 체포 영장
정 씨 “법 악용 반대 목소리 억압”
합법 이민자에 칼날 겨눠 논란

개강 첫날인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 밖에서 학생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대학 재학생 정 씨와 졸업생 마흐무드 칼릴은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영주권자지만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개강 첫날인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 밖에서 학생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대학 재학생 정 씨와 졸업생 마흐무드 칼릴은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영주권자지만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학생이 가자 전쟁에 반대하는 친팔레스타인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앞서 대학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한 미국 영주권자 마흐무드 칼릴과 같은 논리로 추방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이민법으로 억압하는 사례로 꼽히며 반발이 크다.

25일 AP 통신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콜롬비아 대학에서 영어와 젠더학을 전공하는 3학년 정 모(21·여) 씨가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 씨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비시민권자를 강제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막고, 자신이 뉴욕에서 강제 이송당하거나 미국에서 추방하지 않도록 보장해달라”고 연방 법원에 요청했다.

앞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정 씨가 학내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정 씨를 체포하고 추방하려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 씨의 행동이 반유대주의 확산을 막으려는 행정부의 외교 정책 목표를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씨는 7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이후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권은 없다. 미국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대학 성적도 좋은 학생이다.

그는 콜롬비아대 내 학생 시위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석해 왔다. 특히, 지난 5일(현지 시간) 콜롬비아 대학이 학생 시위자에 대한 징계를 내린 것에 반대하며 시위하다 체포된 이후 ICE가 자신을 추방하려 했다고 밝혔다. 정 씨는 학내 바너드 칼리지 도서관에서 연좌시위를 하다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뉴욕경찰에 체포됐다.

정 씨는 곧 풀려났지만, 지난 10일 연방 법 집행 관계자로부터 영주권이 박탈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 13일에는 ICE 요원이 콜롬비아대 내 기숙사와 또 다른 건물에서 정 씨를 체포하기 위한 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현재 정 씨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행방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정 씨는 소장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민법 집행을 탄압 도구로 활용해 자신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 씨에 대한 영주권 박탈 시도는 앞서 ICE가 체포한 무하마드 칼릴과 같은 방식이라는 점이다. 칼릴은 학생 대표로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했고, 상황을 언론에 공유한 인물로, 루이지애나주에서 체포돼 현재 구금된 상태다.

미국 국토안보부 고위 관계자는 AP 통신에 “정 씨는 친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시위로 뉴욕경찰에 체포된 전력이 있는 등 문제적 행동을 해왔다”며 “그는 이민법에 따라 강제 추방 대상이 될 수 있고 법원에서 자신의 사례를 다툴 기회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정 씨에 대한 체포 시도와 칼릴의 구금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논평했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체류자뿐만 아니라 합법적 체류 신분을 가진 이민자까지 표적으로 삼아 강제 추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칼릴은 지난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영주권자로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칼릴이 UN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에서 일한 경력, 영국 외교부 소속 시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이력, 콜롬비아 내 반이스라엘 학생 연합 활동 등을 미국 이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칼릴을 체포했다. 이전에는 영주권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항이다.

콜롬비아 대학뿐만 아니라 코넬대, 조지타운대 등 미국 내 주요 대학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정 씨의 소송이 미국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와 미국 정부의 이민법 집행 권한 사이에서 중요한 판례를 남길 가능성이 높아 미국 사회도 주목하고 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