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국가가 해외 입양 과정서 아동 인권 침해”
26일 입양 인권침해 기자회견
367명 중 56명 ‘진실규명’ 결정
절차 미준수, 허위 기록 등 확인
생후 3개월 때 벨기에로 입양된 진명숙 씨는 20년간 친부모를 찾기 위해 7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사진은 입양기록을 찾기 위해 부산 동성원을 방문한 사진 등. 본인 제공
과거 해외로 입양된 아동들이 입양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국가의 불법 해외 입양과 그 후 입양인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부산일보 2024년 9월 23일 자 1면 등 보도) 등이 사실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26일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화위는 지난 25일 제102차 위원회에서 해당 안건 신청자 56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신청 취소자를 제외한 367명의 입양기록을 확보해 56명의 사례에서 인권침해를 발견했다. 2022년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11개국에 입양된 한인 375명은 자신들의 입양 서류가 조작된 의혹이 있어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조사를 신청했다.
이번 조사에서 입양 알선 기관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적법한 입양 동의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는 미아인 아동을 고아라고 허위로 기록해 입양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의 신원을 조작한 정황도 파악됐다. 입양 수속 중이던 아동이 사망하거나 연고자가 아이를 되찾아갔을 때 새로운 아동의 신원을 기존 아동으로 조작해 출국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해외 입양 관행이 수십년간 유지된 셈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단일민족 혈통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던 혼혈아를 대상으로 해외 입양을 시작했다. 정부는 1961년 신속한 해외 입양 절차 진행을 위해 ‘고아입양특례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미혼모 자녀, 기아, 미아 등 수많은 ‘요보호아동’이 해외 입양 대상이 됐다. 국가는 입양 대상 아동의 인수, 양부모 검증, 입양 수속, 출국, 외국에서의 법적 절차 완료 등 모든 입양 실무를 민간 입양 알선 기관에 일임했다. 1955~1999년까지 해외 입양된 아동은 14만 1778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진화위는 입양 알선 기관장에게 후견권, 입양 동의권 등을 부여하는 등 입양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국가에 책임을 물었다.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 여부 실태 조사와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신원 조작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 △입양 정보 제공 시스템 개선 △입양인 가족 상봉 지원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비준 등도 권고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