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칠성 신앙과 북극전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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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들은 인간의 삶과 깊숙이 매개한다. 어떤 이에게는 길잡이가 되어 주고, 또 다른 이에게는 복을 가져다주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해와 달, 별들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 수명, 길흉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일월성신과 천지신명 속에 세상 만유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러한 별자리 신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속 신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식, 손자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칠성님께 빌었다. 여기서 칠성님은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불교의 칠성여래불, 기독교 요한계시록의 일곱 별, 도교의 칠원성군 모두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한민족에 있어 북두칠성은 오랫동안 전통 신앙의 중심에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 위에 누이는 것도 칠성 신앙의 한 모습이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뚜껑돌에도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북두칠성의 자손으로 여겨 왕릉이나 무덤 벽화에 북두칠성을 즐겨 그렸다.

절에 가면 통상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혹은 북두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물로 본래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 이 전각은 한민족의 칠성 신앙이 불교와 융합돼 사찰 내에 수용됐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부속 암자가 많다. 통도사에서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안양암도 그중 하나다. 〈통도사 사적기〉에 따르면, 안양암은 1295년(고려 충렬왕 21년)에 찬인대사가 창건 또는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 사찰 건물들은 대부분 근래에 지어진 것이다.

안양암은 북극전으로 유명하다. 북극전은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칠성각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각(閣)’ 대신 ‘전(殿)’을 사용해 격을 높였다. 북극전은 안양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86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네 귀퉁이를 받치는 활주와 연꽃무늬를 새긴 화강석 주추는 절의 품격을 더한다. 최근 이 북극전이 국가유산청의 올해 보물 지정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 너무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북두칠성은 사람의 수명과 풍요, 재물을 주관하지만 비도 관장한다. 비를 내리는 게 하늘을 상징하는 칠성님의 주된 역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국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양암 북극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건물도 감상하고, 더불어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는 건 어떨까?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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