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조훈현과 최고위전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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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기사는 세계 최연소인 9세에 프로에 입단했다. 일본 바둑 유학 때도 기대주로 주목받았고, 일본 프로로 재입단해 현지에서 맹활약했다. 일시 귀국했던 1974년 운명적 장면을 만난다. 9년의 해외 생활로 길이 낯설어 한국기원에 갈 때마다 택시를 탔는데, 모친이 옆집에서 택시비를 빌리는 모습을 본 것. 시장 야채 행상으로 생계를 잇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깨달은 충격은 컸다. 유학도 독지가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돈 걱정을 한 적이 없던 조훈현은 이날 결심한다. “바둑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일본 복귀 고민을 접고 생계형 바둑 기사로 거듭난 계기다.

1974년 〈부산일보〉 주최 최고위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959년 시작된 최고위전은 국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타이틀이었다. 22세 앳된 조훈현은 결승에서 3판 연속 이겨 생애 첫 타이틀을 거머쥔다. 상금 30만 원은 미대에 입학한 여동생 학비에 보탰다. 그는 자서전 〈고수의 생각법〉에서 “그 이후로 생계를 위해 바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고 술회했다. 당시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국내 8대 타이틀 죄 따겠다”던 포효는 곧 이뤄졌다. 타고난 재기에 호승심까지 덧붙여진 조훈현의 질주는 아무도 막지 못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승부’는 그즈음 시작된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숙명적 대결을 그린다. 1990년 최고위전이 변곡점이었다. 결승 5번기에서 양측 모두 5시간씩을 채우는 처절한 혈투 끝에 제자가 반집을 이기며 타이틀을 빼앗는다. 스승이 37세, 제자는 15세 때 일이다. 스승의 황금기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자가 커 버린 것이다.

당시 〈부산일보〉 1면 기사 제목은 ‘한국 바둑계 최대 파란’이었다. 이어 스승이 최고위 타이틀로 ‘바둑 황제’에 등극했는데, 16년 만에 제자에 타이틀을 빼앗긴 것은 “새로운 황제 탄생 예고”라고 전망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스승은 제자의 무차별 공습에 속속 타이틀을 빼앗겨 ‘무관의 제왕’까지 내몰렸다. 절치부심한 스승은 재기했고 제자와 경쟁하면서 해외 기전까지 휩쓸며 1990년대 한국 바둑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조훈현 기사는 은퇴했고, 최고위전은 중단되면서 명승부는 옛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바둑판에서 상대를 꺾어야만 했던 사제지간의 숙명적인 고뇌의 순간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극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바둑이라며, 매 승부에 최선을 다하던 모습은 여전히 큰 울림을 남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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