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열정으로 빛의 아름다움 창조… ‘유리 예술’ 조명한다
도자 전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006년 개관 이래 첫 ‘유리’ 전시
‘유리 왕국’ 가야의 전통 되돌아봐
국내외 작가 21명 200여 점 선봬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 오프닝 풍경. 돔하우스 1층 중앙홀 공중에 장식돼 있는 것은 조은필 작가 작품이다. 김은영 기자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참여한 이재경 작가가 돔하우스 중앙홀을 사틴 유리 패널과 1000여 개의 구슬로 빛의 공간을 연출했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전시 오프닝 때 모습. 김은영 기자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전시 중인 이재경 작가의 유리 구슬 작품. 김은영 기자
돔하우스 중앙홀에 들어서면 가야의 푸른 구슬을 연상시키는 코발트 색상의 설치 작품이 공중에 둥둥 떠 있다. 언뜻 나비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은행나무잎이다. 가야 시대 왕궁터에 뿌리내린 은행나무를 모티브로 조은필 작가가 설치한 13m 규모의 작품이다. 중앙홀 정면의 대형 대리석 아치는 반투명 무광택 사틴 유리를 패널처럼 부착한 뒤 크고 작은 구슬 형태의 유리 1000여 개를 붙여서 빛의 공간으로 연출했다. 이재경 작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숨’이라는 물방울 1000여 개를 하나하나 손으로 붙였다”며 “그 시간만 해도 1주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 이보다 더 직관적인 제목은 찾기 힘들 것 같다.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유리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마련됐다. (재)김해문화관광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지난달 18일 특별 기획전 ‘유리: 불과 빛의 연금술’을 시작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이어진다. 2006년 3월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으로 문을 연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도 유리 전시는 처음이다.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참여한 호주의 벤 에돌스&캐시 엘리엇 부부 작가 모습. 김은영 기자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전시 중인 유리 작품과 김준용(오른쪽) 작가. 김은영 기자
개막식에는 미국의 매트 에스쿠체, 일본의 노다 유미코, 호주의 벤 에돌스&캐시 엘리엇 등 세계 유리 거장들과 국내의 김정석, 김준용, 박성원 등 현대 유리 예술을 선도하는 작가들이 함께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12명, 일본 7명, 미국과 호주 등 총 21명의 작가가 참여해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참여한 작가들. 김은영 기자
2025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특별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에 참여한 작가들 모습. 김은영 기자
전시의 출발점은 김해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리공예 목걸이였다. 2020년 국가유산청은 김해 대성동 76호분, 양동리 270호분,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유리·수정 목걸이 3건을 국가 보물로 지정한 바 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최정은 관장은 “과거 유리구슬을 보면 푸른색이 많았는데, 그 코발트 원석을 사용한 유리 세공 기술이 가야에서도 굉장히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1층 중앙홀의 코발트 색상 대형 은행나무잎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대형 유리 게이트 역시 가교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최 관장은 또 “가야의 유리 목걸이는 보물로 지정된 것 외에도 많이 남아 있고, 유리 유물이 나오는 규모도 백제나 신라를 능가해 철의 왕국 가야가 유리 왕국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물질로 각광받으며 개발과 발전을 거듭하는 사실도 우리가 유리에 주목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총 5개 파트로 이뤄진다. △가야로부터: 유리의 기원과 역사 △유리_비결정의 아름다움: 블로잉 기법의 진화와 유리공예의 진수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 유리 물성 연구와 창작 실험 조명 △유리공예의 지속 가능성: 니지마유리의 지속 가능성으로부터 유리공예 담론의 장 △유리 예술의 무한 변주: 공예적 가치를 넘어 현대미술로 확장하는 유리 조형 예술 조명 등이다.
박성원의 '모자를 쓴 남자'.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제공
박성훈 작가 유리 작품. 김은영 기자
벤 에돌스&캐시 엘리엇 유리공예 작품. 김은영 기자
벤 에돌스&캐시 엘리엇은 25년간 함께 작업한 부부인데, 이탈리안 테크닉(블로잉+케인)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매트 에스쿠체는 이날 유리 램프 워킹을 시연했으며, 실제 페트병과 유리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섬세함을 보였다. 후쿠니시 다케시는 캐스팅 기법으로 표현하기 힘든 형태와 얇은 유리 작품을 만들었다. 하타 아야코는 가느다란 파이렉스 봉을 녹여 와이어 방식으로 형태를 완성 후 공간에 설치했다. 야나기 켄타로도 램프 워킹 기법으로 만든 파이렉스 봉이나 관을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설치 작품을 완성했다.
김준용 작가 유리 작품. 김은영 기자
강민성 작가 유리 작품. 김은영 기자
벤 에돌스&캐시 엘리엇 'Blue Leaf'. 김은영 기자
노다 오사무의 'Niijima Construction'. 김은영 기자
매트 에스쿠체의 'bottles'.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제공
노다 유미코의 '해풍'. 김은영 기자
최상준 작가 유리 작품. 김은영 기자
김준용 작가는 블로잉과 콜드 워킹 기법을 활용해 안과 밖 2가지 컬러로 그라데이션 한 유리 공예 작품을 출품했다. 이태훈 작가는 해 질 녘 작업실 마당에서 본 민들레 꽃씨에서 영감을 받아 필리그리 케인과 블로잉 기법으로 유리 작품을 제작했다. 강민성 작가는 도자와 유리의 매체 융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상준 신진 작가는 ‘beard man’이라는 턱수염 캐릭터를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이재경 작가는 “유리(공예)는 몇 년 집중한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자유자재로 구상하는 데까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고 전했다. 김준용 작가 역시 “도자 전문 미술관으로서 대규모 유리 전시를 연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면서도 “유리공예 역시 불을 다루는 데다 유약도 유리 성분이어서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성훈 작가는 “국내외 작가와 함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감사를 표했다.
한편, 전시 기간 유리공예 체험 워크숍과 시민 참여 행사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문의 전시교육팀 055-340-7003. 입장료 5000원.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