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과 그림이 만나는 전시…“지리산에 산다는 곰은 잘 있는지 궁금했어요!”
‘왜그랬어.곰’-오소영 초대전
5월 7일까지 중앙동 18-1갤러리
‘오우암 미술관’ 건립의 꿈 다져
‘왜그랬어.곰’-오소영 초대전 전경. 김은영 기자
“지리산 반달가슴곰 추적조에서 1년간 일했어요! 남원에 국밥집도 냈고요.”
‘왜그랬어.곰’이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직접 헌 옷과 자투리 천을 자르고 붙이고 깁은 인형과 19점의 그림을 전시 중인 부산 중구 중앙동 18-1갤러리(대청로141번길 18-1)에서 만난 오소영 작가는 난데없이 곰 추적조 이야기를 꺼냈다. 4년 전 부산에서 함양으로 이사를 가서 백두대간 산맥이 지나는 집 앞의 지리산이 궁금했고, 그곳에 사는 곰 한 마리 이야기를 전해 듣고 너무 신기해서 시작한 일이란다. 그러고 보니 인형은 곰 같기도 고양이 같기도 하다. 그림마다 빠짐없이 등장해 우두커니 서 있는 곰 한 마리는 영락없는 작가일 것이다.
18-1갤러리에서 만난 오소영 작가. 김은영 기자
“제가 돼지국밥을 좋아해요. 점심 장사만 하고, 딱 오후 2시에 가게 문 닫고 집에 오면 오후 2시 20분, 그리고 12시간은 그림을 그려요. 예전엔 순댓국 장사도 해 봤고, 인테리어 업체도 운영했어요. 먹고 살아야죠.”
부산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9번의 개인전을 연 그는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된 부친 고 오우암(1938~2023) 작가와 함께 2022년 경남 함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하나뿐인 딸은 결혼했으며, 오 작가는 곰을 쫓아다녔고, 또다시 국밥집을 내는 등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다.
4월 26일~5월 7일 부산 중구 18-1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오소영의 작품. 18-1갤러리 제공
작품은 이전보다 한결 밝아지고, 편안해졌다. 마치 오래된 다락방을 들여다보듯 따뜻함과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초기의 ‘들불 시리즈’를 지나 ‘밤 풍경 시리즈’ 때만 해도 짙은 청색으로 곧잘 표현되는 어둠이 짙게 깔린 어두운 풍경이거나 어스름한 불이 전면에 드러났다. 이번에는 유화 물감에 테레빈유를 잔뜩 써서 광은 안 나지만, 파스텔톤 느낌의 청색과 초록이 주조를 이룬다. 활짝 핀 벚나무, 연둣빛 수양버들, 초록 숲과 능선, 유유하게 흘러가는 흰 구름, 심지어 그림 속 작가 분신인 곰은 흰옷과 분홍색을 입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함양살이 4년이 일궈낸 작은 변화가 아닌가 싶다.
“제가 사는 우리 동네 색깔이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나온 것 같아요. 시골에선 분홍색이 흔해요. 봄꽃만 하더라도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 등 전부 분홍색이잖아요. 배꽃은 흰색이고요.”
4월 26일~5월 7일 부산 중구 18-1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오소영의 작품. 18-1갤러리 제공
꽃과 나무, 들판, 숲 그림 속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그림 한 점이 있다. 울창한 검은 숲 아래 박공지붕의 집 한 채가 우뚝하고, 그 집 한가운데 노란색 창이 위아래로 길쭉하게 나 있다. 그림의 아래 절반은 검은 땅이다. 조심스러웠지만, 커다란 비석을 세운 무덤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불빛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이 집은 제가 죽을 때까지 살 집이고, 지금 우리 집 마당엔 아버지가 계세요. 제가 맨날 왔다 갔다 하는 마당 한쪽 바위에 덮개돌을 씌우고, 엄마 아버지를 같이 모셨어요. 언젠가 아버지 미술관도 꼭 짓고 싶은데 이 근처에 세우려고요.”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홀로서기는 아마도 ‘오우암 미술관’ 건립을 하루라도 당기고 싶은, 작지만 큰 걸음이 아닐까 싶다. ‘왜그랬어.곰’-오소영 초대전은 5월 7일까지 계속된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