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은 ‘이태석 자신’… ‘슈바이처’ 수식어 없어도 돼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
신부·의사·교육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
10명의 필진이 입체적으로 연구 분석
수단의 슈바이처, 한국의 슈바이처…. 아프리카 수단(현 남수단)에서 의료봉사와 교육, 선교 활동을 하다 암 투병 끝에 선종한 이태석 신부를 얘기할 때 흔히 붙이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수식어는 신문 기사는 물론이고, 방송 다큐멘터리와 책 제목으로 활용될 만큼 보편적으로 쓰인다. 실제로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와 이태석(1962~2010), 의사였던 두 사람의 삶은 자신이 아는 가장 낮은 곳인 아프리카 오지에 뛰어들어 헌신과 봉사를 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식민주의’ 관점에서 보면 둘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거나 이태석 앞에 ‘슈바이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전혀 자연스럽거나 온당한 일이 아닐 수 있게 된다. 인제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 교수에 의하면 서구 제국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보유가 엄연한 현실이었던 시대를 살아간 슈바이처와 탈식민지적 질서가 정착했던 시대를 살아간 이태석의 시대정신과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 이태석’이라는 부제가 붙은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는 평전이나 위인전, 혹은 추모집에 한정됐던 기존의 이태석 서적과는 다른 결을 가진 책이다. 저자인 ‘인제의대 이태석연구회’엔 인제의대 교수를 포함해 교육학자, 국어학자, 사회학자, 문학평론가, 문화 활동가 등 부산과 경남에서 활동하는 10명의 전문가가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책은 가톨릭 사제뿐만 아니라, 의사, 교육자, 음악인, 건축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던 인간 이태석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 보려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한국해양대 김태만 교수는 이태석의 귀천을 가리지 않은 보편적 사랑을 묵자의 ‘겸애사상’으로 해석하며 “친구합시다, 이태석 신부님!”이라고 손을 내민다. (이태석이 남긴 유일한 저서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이다.) 김 교수는 겸애사상을 ‘신분이나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 관계에 의한 서열을 과감히 파괴할 줄 안다는 점에서 유가의 인(仁)이나 불가의 자비(慈悲)보다 훨씬 혁명적’이라고 설명한다.
네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친 이태석의 모습을 분석한 백태현 전 부산일보 논설실장은 “이태석이 보여준 사랑과 나눔의 방식은 꼭 신앙 차원의 실천이 아니더라도 불안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유효한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플랜비 문화예술협동조합 송교성 대표는 이태석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려는 각계의 사업과 활동이 개인의 숭고한 삶을 기리는 현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를 지역, 즉 부산의 정체성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부산시나 학교, 문화재단 등이 함께하는 장기 사업을 통해 과거의 감동을 공공적이고 지속 가능한 ‘부산 정신’으로 현재화하자는 주장이다. 이태석을 장기려 박사, 이수현 의사와 함께 ‘부산의 의인’으로 공동 기념하자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책은 이태석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제자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톤즈에서 이태석을 만난 뒤 의사의 꿈을 꾼 제자들은 한국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전임의가 돼 고향에서 의술을 펼칠 날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슈바이처’를 떼고 이태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김택중 교수는 이태석은 ‘이태석 자신’이라며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책 제목은 이태석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Everything is Good'에서 따왔다. 인제의대 이태석연구회 지음/호밀밭/352쪽/2만 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