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욱·이건희 ‘한 지붕 두 공간’ 전시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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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까지 부산 중구문화원 복병산작은미술관
작품 전반 해체적 분석 시도한 정희욱 개인전
재료가 부각된, 물성 이미지화 이건희 개인전

정희욱 작가 작품. 작가 제공 정희욱 작가 작품. 작가 제공
이건희 '조물조물'(2025). 작가 제공 이건희 '조물조물'(2025). 작가 제공
부산중구문화원 복병산작은미술관 외형. 김은영 기자 부산중구문화원 복병산작은미술관 외형. 김은영 기자

부산의 중견 조각가 정희욱과 서양화가 이건희가 한 지붕 두 공간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다. 1932~1934년 일본 다케나가공무점이 건립한 옛 다테이시 요시오 주택을 개조한 부산중구문화원 복병산작은미술관(복병산길 20)에서 25일까지 여는 전시회다. ‘정희욱의 해체-나는 내가 아니다’는 이 건물 옛 창고 1·2층에서, ‘이건희 개인전-가시적 촉각’은 개조한 주택 1, 2층을 활용하는데 전시 공간이 독특해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느낌 또한 아주 색다르다. 두 작가는 지난해 이곳에서 열린 ‘안창홍. 드로잉, 오래된 미래’를 보러 왔다가 공간이 너무 탐나서 전시를 추진하게 됐다. 두 사람은 한 살 차이로, 2012년에 2인전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정희욱 작가. 김은영 기자 정희욱 작가. 김은영 기자

정희욱 작가 전시 공간부터 둘러봤다. 옛 창고 건물에 들어서자 종소리 같은 징 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자각상’ 돌조각을 만드는 작업 광경이 담긴 동영상이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스마트폰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다. 벼루나 비석에 주로 쓰는 검은 돌인 ‘오석’은 단단하기가 화강암에 버금간다더니 소리만으로도 그 단단함이 전해지는 듯했다.

정희욱 작가 작품. 작가 제공 정희욱 작가 작품. 작가 제공

거의 평생을 돌 작업만 해 온 작가였기에, 이번 전시의 핵심이 ‘해체’라고 해서 조금 의아했다. 포스트모던과 데리다를 잘 모르던 1990년 후반에도 그는 이미 ‘해체’라는 개념의 작업을 진행했었고, 뒤늦었지만 이전 작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거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컨템포러리로 확실히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번 전시에서 단색의 평면 캔버스를 깨진 조각과 함께 배치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작품 사이에 관계성이 생겨났다. 깨진 조각은 과거의 전체를 암시하면서도 새로운 조합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맥락을 형성하는 듯했다. 노랑, 검정 등 단색의 배경 색조는 보는 이에 따라 여러 상징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얼굴 조각도 내부가 비어 있거나 세부 묘사가 생략됐다. 관객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개인전에선 10여 점의 평면, 입체, 설치, 동영상을 만날 수 있다. 정희욱 작가는 이달 30일부터 6월 19일까지 동구 제이작업실에서도 ‘정희욱 개인전’을 이어간다. 달라지는 공간에서 또 어떤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건희 작가. 김은영 기자 이건희 작가. 김은영 기자
이건희 '사이 사이에 보여지는'. 작가 제공 이건희 '사이 사이에 보여지는'. 작가 제공

이건희 작가는 재료가 좀 더 부각된 전시를 보여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촉각이다. 그것도 ‘가시적 촉각’(Visual Tactility)이다. 원래 전공은 서양화였지만, 어느 순간, 디테일이 묘하게 살아 있는 종이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재료 공부를 파고들게 됐다. 본인 작업에 사용되는 종이는 직접 만들어서 쓴다. 물성을 이미지화하는 데 있어서도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느끼게끔 유도한다. 2층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종이로 만든 바다’가 펼쳐졌다. “이 작품에 대해 저는 바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다 바다라고 이야기해요. 바다를 굳이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나오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연구하는 겁니다.” 분명 종이를 몇 겹 발랐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고, 사람 얼굴이 되었다.

이건희 작품. 김은영 기자 이건희 작품. 김은영 기자

이번에는 그 옆방으로 건너갔다. 한강의 소설 <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작은방 가득 펼쳐졌다. “종이를 다루면서, 물성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냐면, 물성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너무 강할 때 제가 개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개입하는 순간, 조잡해질 수 있어서요. 한강 작품 <흰>을 읽으면서도 고민한 게 결국 흰색의 재료 원천은 삶과 죽음이 맞닿은 곳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물성 자체로는 모든 걸 다 내려놓았을 때의 담백함까지만 표현하자는 마음으로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정식 전시 공간이 아니고, 문화원 프로그램 운영 공간이기도 해서 반구대 암각화 영상 설치를 동시에 할 수 없었던 게 아쉽다고 전했다. 전시 외에도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한 생활소품과 판화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두 작가 모두 꽤 자주 개인전을 하는 편이지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일단 작업량이 많아야 전시를 열 수 있고, 매번 같은 걸 보여줄 수 없지 않느냐”면서도 “전시를 자꾸 하다 보면 공부되는 게 있더라”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토요일은 휴관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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