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념공원 사진을 9년째 찍는 이유는…
부산 남구 거주 정춘산 사진가, 2017년부터 촬영
6·25 발발 75주년… “익숙해진 기억 되어선 곤란”
"유엔참전용사 헌신과 희생, 하루만이라도 기억을"
정춘산의 사진 작품. 유엔기념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 제공
정춘산의 사진 작품. 유엔기념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 제공
정춘산의 사진 작품. 유엔기념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 제공
끝없이 이어지는 무덤들, 바람에 펄럭이는 게양대의 국기, 영정사진 속 젊디젊은 군인 모습, 울고 있는 유족, 나란히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퇴역 군인들, 다리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 등산복 차림의 중년 부부, 뒷짐 진 손에 들린 한 송이 국화꽃 ….
201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찍는 사진가가 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정춘산(60) 사진가다. 이름은 ‘공원’이지만, 실상은 ‘묘지’인 그곳을 찾아서 사진 작업으로 담은 지 어언 9년째다.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둔 24일 오전에도 정 사진가는 평소처럼 120 중형 필름 카메라를 메고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유엔기념공원 사진 시리즈를 시작할 때부터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를 선택했습니다. 쉽게 찍고, 곧바로 확인하고, 지울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만의 무게감이라고 할까요.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 자체가 그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추모하는 예의가 아닐까 하고요.”
중형 필름 한 롤이라고 해 봤자 6x6cm프레임으로 하면 단 12컷에 불과하다. 어떤 때는 이것도 못 찍고 돌아올 때도 많았다. 중형 필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표적인 카메라 포맷인 35mm 135 필름은 프레임 크기가 36x24mm로 직사각형이지만, 제가 선택한 6x6cm프레임은 정방형입니다. 한국전쟁도 냉전 체제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이었기 때문에 흑백논리가 강했습니다. 단순하지만 직사각형이 되면 한쪽으로 치우칠 것 같아서 정방형으로 찍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사진 전공자가 아니다. 2007년부터 독학하다시피 사진을 찍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음엔 디지털카메라를 잡았고, 사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점점 궁금증이 생겨서 2010년께 사진 전문학원에 등록해 필름 현상부터 새로 배웠다. 이때부터 흑백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제를 잡고 찍기 시작한 게 유엔기념공원이다. 그전에는 감천문화마을을 몇 년간 찍긴 했지만, 발표는 하지 않았다.
정춘산의 사진 작품. 유엔기념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 제공
정춘산의 사진 작품. 유엔기념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 제공
그는 유엔기념공원 시리즈 7점을 출품한 2020년 제3회 아시아문화국제사진공모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2021년 4월엔 첫 개인전 ‘정춘산 사진전-익숙해진 기억’을 갤러리 수정에서 열기도 했다. 지난해는 부산문화재단 우수예술 지원 사업에 선정돼 첫 사진집 <그날들>(헥사곤 펴냄)을 출간했다. 지금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태평로의 공간 백경에서 지난해 출간한 <그날들>에서 엄선한 작품으로 ‘정춘산 사진전-그날들 그날의 넋을 기리다’(6월 20~26일)를 전시 중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에서 사진 전시 중인 정춘산 작가 모습. 동길산 시인 제공
그는 왜 유엔기념공원 사진을 수년째 찍고 있는 것일까. 그는 “처음엔 공원이지만 묘지인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는 또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되었지만, 그들의 숭고하고 값진 희생을 우리의 무관심으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부산에서 연 첫 개인전 제목이 ‘익숙해진 기억’을 내건 이유를 알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쟁 중이 아니라고 인식되는 (휴전) 상황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는 2300여 혼령의 희생이랄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의 공포와 생존 후 겪어야만 했던 고통의 그날이 우리의 무관심으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루빨리 종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지금 ‘묵념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유엔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6월 25일 하루만이라도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