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엑스포 백서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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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활동의 전 과정을 담은 백서가 나온다고 한다. 올 3월에 발간한다고 했다가 ‘상반기 중’으로 미뤄졌는데 이번엔 진짜로 ‘곧’ 나온단다. 유치전에 실패(2023년 11월)한 뒤 1년 8개월이 지난 시점이어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취임식에서 “지난 몇 년간 외교 사안이 국내 정치에 이용되어 왔다”고 사과했다. 여기에는 2030월드엑스포 유치 과정에 대한 반성도 포함됐다. 그는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지는데도 끝까지 ‘올인’했다”고 비판했다.

조 장관은 취임사를 하면서 자신이 청년층을 상대로 강연하면서 자주 언급했다는 세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하나같이 부산 엑스포 유치 때의 문제점들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첫째 “격식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우선시하라. 거시적이고 전략적 사고를 기르는 데 힘을 쓰라”고 당부했다. 정부와 부산시는 나름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은 투표권을 가진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인사들과 만나 ‘한국을 지지하겠다’는 립서비스만 듣고 이를 국내에 다시 홍보하는데 급급했다. 실질적인 득표로 이어지는 전략보다는 격식만 챙기다 헛다리를 짚었다.

둘째 “독립적 사고의 주체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밝혀 달라. 상사 입장이나 지시를 무조건 따르고 분위기를 고려해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나의 아첨”이라고 지적했다. 엑스포유치위원회, 외교부, 부산시의 실무자들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까라면 깐다’는 옛 군대 문화에 익숙한 때문인지 유치 과정에서 소신있게 역할했다는 공직자 이야기는 없었다.

끝으로 “과학적 지식을 가까이 하고 이성적 판단을 믿어라. 합리성에 기반한 의사결정 습관을 기르라”고 했다. 유치전이 한창일 때 외교 공관이나 현지 기업 주재원들은 수시로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팩트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 보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의사결정에 임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저지한 뒤 2차 투표에서 역전할 수 있다며 희망 고문을 했다. 심지어 1차 투표에서 끝낼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낙관론까지 있었다.

‘119 대 29’라는 참사 속에는 조 장관이 지적한 세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끼어있었다. 부산이 어째서 압도적 패배를 당했는지, 어이없는 판세 분석은 어디서 나왔는지 백서가 실패 원인을 냉철하게 되짚었을지 궁금하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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