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물밑 제안’ 안 내켰나… 부총리 출국 직전 연기 통보
위기 맞은 한미 관세 협상
미 재무장관 긴급한 일정 이유
“빠른 시일 내 일정 잡자” 제안
상호 관세 시한 앞두고 이상기류
투자 규모 등에 불만 표출 의혹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4일 인천공항에서 굳은 표정으로 되돌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현지 시간으로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간 ‘2+2 통상 협의’가 돌연 취소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관세 협상 마감 시한이 8월 1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통상 협의는 사실상 관세 협상의 골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상이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4일 오전 9시 미국 측으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협의 취소 통보를 받았다. 미국 측은 이메일에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수차례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구 부총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대기 중이었고 출국까지는 1시간 남은 상황이었다. 연락을 받은 구 부총리는 오전 9시 50분께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굳은 표정으로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기재부는 미국 측이 밝힌 연기 사유에 관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 긴급한 일정이 무엇인지는 미국 측으로부터 별도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은 “미국 측이 ‘빠른 시일 내 다시 일정을 잡자’고 문의해 왔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베선트 재무장관의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인해 협의가 취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미국 한 나라와만 관세협상을 해야 하지만, 미국 측은 세계 다수의 국가들과 동시에 관세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양국 통상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측 설명대로 빠른 시일 내 일정이 다시 잡히지 않는다면 이런 우려는 커질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가 있다. 두 사람은 미국 측 카운터 파트와 잇따라 면담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측이 한국 정부의 물밑 제안에 만족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이번 협의에서 국내 기업들과 함께 1000억 달러(약 137조 원) 이상의 현지 투자계획을 세워 미국 측에 곧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은 국내 기업들의 순수한 투자계획을 모은 것이어서 향후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10대 그룹과 접촉해 가용한 현지 투자금액을 취합했다.
또 우리 정부는 일본처럼 투자펀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그렇게 되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한국투자공사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미 4000억 달러(약 550조 원)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을 요구해온 것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에 불만이 있었을 수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5500억 달러 투자 펀드 조성안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쌀과 소고기 시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과 같은 디지털 통상 이슈에 대해서도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미국 측이 불만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이날 자동차 관세 여파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3조 6016억 원으로 작년보다 15.8%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다만 매출은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48조 2867억 원으로 7.3% 증가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