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립박물관 500만 시대
국립중앙박물관은 국가의 문화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방대한 유물과 전문 학예 인력, 안정적인 예산, 그리고 국제 교류 시스템을 두루 갖추고 있어 학술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견인한다. 그 위상과 규모는 다른 지방 국립박물관이나 시립박물관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시립박물관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소장 유물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예산은 제한적이며, 국제적 인지도 또한 낮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이유로 존재의 의미를 축소한다면 지역은 영원히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립박물관이 국가의 역사를 말한다면, 시립박물관은 지역의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시민의 기억과 지역의 정체성, 생활문화와 도시의 흐름을 담는 곳이 바로 시립박물관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독일 루르 지역의 졸페라인 산업유산 박물관은 주 정부가 나서서 폐광을 문화 공간으로 키운 사례다. 탄광 노동자의 헬멧 하나, 녹슨 설비 하나에도 ‘산업 문명의 기억’이라는 서사를 입히자 세계가 주목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5일 기준 연간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1945년 개관 이후 처음이자 역대 최다 기록이다. 루브르, 바티칸, 영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이어 세계 5위권 성과로 평가된다. 관람객 숫자도 놀랍지만 그보다 주목할 점은 박물관의 변신이다. 한때 조용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국박은 과감히 대중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유튜브와 SNS를 적극 활용하고, K 팝, 웹툰, 게임 등 대중문화와 전통문화를 나란히 배치해 배우는 곳에서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감각적 콘텐츠와 체험형 프로그램, 굿즈 등으로 관람 경험을 확장한 점이 주효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중소 도시에도 있는 국립박물관(해양박물관 제외)이 유독 부산에는 없다. 시립박물관을 국립으로 승격해야 한다거나, 2005년 개방형 직위 제도 도입 이후 내부 인사가 단 한 번도 관장에 임명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는 너무나 오래된 지적이자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제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박물관 자체의 변화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시립박물관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요구된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국박 500만 명 시대를 보며 부산시립박물관의 길을 묻는다. 박물관이 잠들면 도시의 기억도 함께 잠든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