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따라잡기’에 무너지는 교실[현장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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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열 정관고 교사

매년 3학년 2학기 수시 면접이 시작되면 교실은 텅 비고, 수행평가는 진행조차 어렵다. 합격자 발표가 이어질수록 등교하지 않거나 자리만 지키는 학생이 늘고, 수업은 형식만 남은 채 공허하게 서류로 채워진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대학·학과별로 권장 이수 과목이 제시되고 복잡한 전형이 난립하면서 입시는 ‘정보 전쟁’이 됐다. 청소년의 진로 유연성은 오히려 막히고, 정시에만 몰두하는 ‘정시 파이터’나 ‘전략적 자퇴생’이 늘고 있다. 학생의 ‘선택권’은 자유가 아니라 부담이 됐지만,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있다.

교육청과 학교가 상담 인력을 늘려도 사설 컨설팅 업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컨설팅 업체는 내신 분석, 활동 설계, 과목 선택, 수행평가 준비까지 대신하며 학생의 삶을 입시 서류로 가공한다. 학생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신, 누군가 써준 이야기를 연기한다. 교육부가 진로 상담교사나 컨설턴트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양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 공교육의 진로 상담은 사교육을 따라가서도, 따라가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공교육 안에서 ‘입시 효율’을 높이려는 임시방편을 내놓고 있다. 과거 합격 데이터를 흉내 내는 ‘진로상담 프로그램’으로는 학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과정의 통합과 균형을 회복해 컨설팅이 필요 없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대학이나 학과에 맞춘 과목 조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공통교육과정이 절실하다.

입시 개혁의 출발점은 학생이 공부와 학교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진로 다양성은 3년간의 과목 선택이 학과 선택에 발목 잡히지 않을 때 가능하다. 하나의 선택이 입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학생이 흥미와 잠재력에 따라 배우고, 실패를 감내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진정한 자율이며, 공교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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