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사랑과 고통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 느껴”
18기 부산일보CEO아카데미 특강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아서’ 주제
“고통스럽지만 포기 못하는 본질, 사랑
그 표현에 물질적 수단 필요할 때 있다”
정제된 서정으로 비극적 현실 세계에 대한 자각과 사랑, 외로움을 노래하는 ‘국민 시인’ 정호승 시인이 지난 28일 롯데호텔부산 펄룸에서 열린 제18기 부산일보CEO아카데미에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이날 강연에서 정 시인은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삶의 근본적 가치,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시간은 존재할 뿐이고,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시인은 이어 ‘여행’과 ‘사랑’을 주제로 한 자신의 시를 낭독하며, 인생을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사랑을 찾아가는 일은 마치 맨발로 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일화를 통해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천임을 전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말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이 필요하다”며 아픈 후배를 위해 시집 속에 봉투를 넣어 건넸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어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반드시 물질적 수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며 “돈의 가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존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시인은 “인생은 짧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시간만큼 짧다”면서 “결국 인생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는 프랑스 피에르 신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강연 후반부에는 그의 대표작 ‘산산조각’과 ‘수선화에게’를 낭독하며,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된다”며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며,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정 시인은 “인생이라는 빵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는 사랑과 고통”이라며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1950년 1월 경남 하동 출생인 정 시인은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슬픔이 기쁨에게’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두운 시대를 사는 슬픔과 의지를 노래한 <슬픔이 기쁨에게>(1973),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슬픔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담은 <서울의 예수>(1982),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 다스림의 내면적 고투를 드러낸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고독한 인간의 숙명과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약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 짧은 시간 동안>(2004),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을 담은 <포옹>(2007) 등을 펴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