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란 '나와 무관했던 것'에의 정직한 응답
■ 말은 때로 너무 늦게 도착한다/이진서
36권의 책을 읽고 쓴 서평 모음
내용 소개하거나 비판하는 서평 탈피
독자들이 감응할 수 있는 글쓰기 돋보여
경남 김해시 고석규비평문학관에서 저자 이진서 씨가 비평적 글쓰기 강의를 하는 모습. 저자 제공
저자는 자신이 쓴 서평을 ‘감응의 글쓰기’라고 정의했다. 하나의 책에서, 한 줄의 시에서, 혹은 사라진 사람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지했고, 그 감정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기록했다. 읽는 행위는 단지 해석이 아니라 나와 무관했던 것들에 대해 응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응답이 정직하고 조심스럽고 깊을수록 글은 누군가의 삶을 어루만질 수 있고, 이런 응답의 글이 ‘감응의 비평’이라고 설명했다.
저자의 이 같은 생각은 메리케이 월머스의 책 <서평의 언어>에 관한 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평은 타인의 세계에 한발 다가서되, 자신의 언어로 응답하는 것이다. 수많은 책과 저자에게 말을 걸고, 또 자기 삶과 감각으로 그 말에 응답한다. 하나의 사유가 또 다른 사유를 일으키고, 하나의 문장이 또 다른 문장을 촉발하는, 일종의 지적 감응의 연대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술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책에서 나온 문장들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서평을 창작이라고 불렀다. 문장 하나를 들여다보면서도 내 안의 시간을 꺼내 오는 글쓰기이며 글에서 받은 반응은 감정의 회로를 통해 다시 쓰이는 삶의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서평의 언어>라는 책에는 ‘서평을 쓰는 평론가는 작가를 넘어서는 창작자이며, 시대를 비추는 감식자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타인을 읽고, 시대를 감지하고, 삶을 다시 쓰는 가장 감각적인 창작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서평을 평가의 시선으로 보지 않고, 언어를 통해 감응하는 기술이자 감정과 기억을 주고받은 윤리라고 정리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정말 자유롭고 과감하게 책과 나눈 대화를 풀어 놓는다. 법은 차가워야 하고, 판단할 때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지만, 감정은 이성의 방해물이 아니라 그 전제이고 타인의 고통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이가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무시했고, 공정성이라는 구실로 감정을 억눌렀다. 정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다가가고자 하는 언어이며, 그 고통을 끝내 지우지 않고 껴안는 태도라는 저자의 해석이 흥미로워 감응이 절로 일어나는 것 같다.
지역 소멸에 대한 언급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지역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도록 방치된 것에 불과하며, 아수라장 같은 서울에서 익명으로 살다가 자발적으로 귀향해 나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기억이 되는 감동을 밝힌다.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에선 수많은 감정 소용돌이와 고통을 ‘누구나 그 정도는 겪는다’라며 무심히 지나쳐 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말한다. 뇌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치유해야 하며, 치유는 상처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살아가는 힘을 다시 회복하자는 뜻이다.
또 다른 장에선 슬픔이 낯선 사회는 재난 앞에서 침묵하고 슬픔을 모르는 정치는 참사의 무게를 견딜 수 없으니 세월호, 이태원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극단과 분열의 근원에는 문해력 결핍이 아니라 감정적 결핍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의견 역시 인상적이다.
36권의 책을 읽고 쓴 36개의 서평이지만, 읽다 보면 정작 서평의 대상이 된 책보다 그 책을 해석한 저자의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인 듯하다.
저자는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으로, 청소년과 시민을 대상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꾸준히 강의하고 있다. 국립부경대 남송우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에 실린 서평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장단점을 비평하는 기존 서평을 넘어 독자들이 감응하고 사유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기존 서평들은 출판사의 홍보용 글쓰기로 전락해 있고, 비평적 안목이 분명한 서평은 논리성에 너무 함몰돼 일반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진서 지음/글넝쿨/240쪽/2만 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