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실마리 풀고 중·일 소통 강화…경주 APEC, 국정 운영 동력으로
이 대통령, APEC 기간 회담서 실용외교
미국과 관세 협상 타결…핵잠 도입 승인도
중·일과도 협력 강화하고 소통 채널 늘리기로
이 대통령 국정 동력 확보 분석 속, 막판 '디테일' 점검 숙제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뒷줄 왼쪽부터 존 리 홍콩 행정장관, 존 로쏘 파푸아뉴기니 부총리,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러시아 국제부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테레사 메라 페루 통상관광부 장관,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 린신이 대만 총통 선임고문.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관세 협상을 ‘깜짝 타결’ 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첫 회담에서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에 깊은 공감대를 쌓았다. 국익 확보를 강조했던 이 대통령이 이번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실용외교를 선보이면서 이번 APEC의 성과는 향후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21개 회원국 정상들과 교류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이번 APEC 기간 중 가장 이목을 끌었던 건 한미 정상회담이다.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1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서 이번 2차 회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탓이다. 관세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빈손 회담’에 대한 우려도 커지던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은 2차 한미 정상회담이란 최대 시험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후속 관세 협상 타결을 끌어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현금 투자 2000억 달러, 조선업 협력 투자 1500억 달러로 나누고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해 외환 시장 타격을 최소화했다. 이로써 한미 간 상호 관세는 15% 인하 지속 적용이 확정됐다.
관세 협상 타결에 따라 ‘안보 패키지’ 합의도 시간 문제다. 이 경우 이 대통령 취임 5개월 만에 한미 동맹이 본 궤도에 올라설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고 말했고, “관세협상을 제일 잘하는 리더이자 국가”라는 표현도 썼다. 이 대통령이 관세 협상 허들을 넘어선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확보하면서 이는 이재명 정부의 불확실한 한미 관계 우려를 불식할 핵심 카드로 작용될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허용’을 요청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 것도 핵심 성과로 꼽힌다.
이어 열린 한일·한중 정상회담에서도 각국 정상들은 ‘동반 협력’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이뤘다. 이 대통령은 이번 경주 APEC을 계기로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와 처음 대면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호혜적이고 안정적으로 양국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 중국이 핵심 광물과 관세를 두고 연일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 속, 한국과 중국은 경제·안보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한미 동맹을 앞세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일부 누그러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 정부는 고위급 소통 채널을 강화하고, 정상 간 소통 역시 이어나가기로 했다.
‘강경 보수’로 분류되며 한일 관계 악화 우려를 낳았던 다카이치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셔틀 외교’를 지속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걱정이 다 사라졌다”면서 “있는 문제는 직시하고 미래를 향해 손을 잡고 나아가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한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상호 협력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밝혔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가진 연쇄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기본 구도를 다졌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와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 의혹 등 논란 속, 이 대통령이 이번 APEC을 계기로 국정 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번 APEC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디테일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의 협상에 따른 ‘팩트 시트’ 문구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국익 침해 가능성을 점검하고 마지막까지 세부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승인한 이후 중국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만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을 위한 ‘줄타기’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자국 내 지지 기반을 의식한 강경 행보를 재개한다면 과거사 문제가 또다시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