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 20.3㎞ 터널에 소방차 진입로 2곳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 후 KTX 열차가 잇따라 고장이나 사고를 일으키면서 승객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장 터널인 금정터널이 취약한 방재 및 비상 대피 시설로 터널 내 사고 발생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는 금정터널과 같은 철도용 터널의 경우 소방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방재시설 설치나 안전관리 기준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으로 소방당국이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철도 운행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4일 부산시소방본부와 코레일 등에 따르면 금정터널은 부산 금정구 노포동에서 동구 수정동 구간까지 길이 20.3㎞에 이르는 국내 최장 터널로 하루 수십대의 KTX 열차가 지나 다닌다.

하지만 긴 터널 길이에 비해 화재 등 비상 상황 발생시 구조인력이 진입하거나, 승객들이 대피할 수 있는 통행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비상상황 때 구조인력 진입 수직구도 4곳뿐
유독가스 배연시설 없고 대피소도 태부족
소방당국 수차례 개선 건의해도 공단 팔짱만


현재 금정터널 내에는 소방차 진입로 구실을 하는 경사터널 2곳과 구조 인력이 진입하거나 승객들이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수직구 4곳이 분산,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들 경사터널과 수직구 사이의 간격은 짧게는 2㎞에서 길게는 3.2㎞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진입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차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 인력이 현장에 접근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산소통과 소방호스 등 25㎏이 넘는 무거운 소방 장비를 짊어진 구조원들이 직접 사고 현장까지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 인력의 현장 접근을 돕기 위해 금정터널 내에 동력 트로리 5대가 비치돼 있지만, 한번에 많은 인력과 장비를 태울 수 없고, 이마저도 속도가 시속 10㎞ 내외여서 현장에 접근하는데 많게는 20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화재 발생 5분 내에 생사가 갈리는 급박한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터널 내 화재 발생시 대형 참사로 비화할 우려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경부고속철도 2단계 완전 개통을 앞둔 지난 10월 시운전 중이던 KTX 열차가 금정터널 안에서 전동장치 이상으로 멈춰섰을 때도 고장난 열차를 터널 밖으로 옮기는 데만도 5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와 함께 터널 내에 소방전용 무선통신 설비가 없어 구조기관 지휘부의 신속한 상황 전파와 긴밀한 현장 지휘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화재 발생 때 유독 가스를 강제로 배출시킬 수 있는 배연기도 설치돼 있지 않아 어두운 터널 내에서 유독 연기에 질식한 승객들이 응급구조를 받기 위해 외부로 대피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환기시설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춘 대피소(면적 200㎡ 이상)가 별도로 4곳에 설치돼 있지만 한꺼번에 수백명의 승객들을 수용하기에는 규모가 턱없이 작은 실정이다.

이처럼 금정터널의 방재시설이 취약한 것은 일반 도로터널이나 도시철도 역사나 선로처럼 소방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국토해양부의 자체 안전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고속철도 완전 개통 전 금정터널에서 긴급구조 훈련을 실시해 본 결과 배연시설이나 현장 접근 및 대피 문제 등에서 여러가지 취약점이 발견돼 코레일 등 유관기관에 이를 개선해 줄 것을 협조 요청했지만, 일부 문제점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열차용 터널은 소방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강제할 방법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고속철도 2단계 구간의 조기 개통과 공사비 절감에만 집착해 터널 설계 당시부터 소방당국과의 긴밀한 협의도 거치지 않는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방재시설 설치에는 너무 둔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시설공단측은 시설 개선 협조 여부 등에 대해 관련 내용을 파악중이며, 이후 적절한 대책 마련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경사터널(사갱)·수직구

경사터널은 폭 8.3m, 길이 909~1천488m에 이르는 '경사굴'로 터널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흙더미를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 파 놓은 것을 터널 개통후 소방차 진입로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구 화명동과 연제구 거제동 두곳에 설치돼 있다.

수직구는 비상 상황 발생시 구조 인력이 진입하거나 승객들이 빠져나가기 위한 비상 대피로 역할을 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금정구 청룡동과 부산진구 양정동, 부암동, 동구 범일동 등 모두 4곳에 설치돼 있다, 지면에서 터널에 이르는 거리는 경사면으로 29~65m에 달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