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국제신도시 침하 무대책] ‘연약 퇴적층 위 국제신도시’ 느슨한 건축 허가에 흔들리는 안전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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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국제신도시에 공사중이거나 이미 지어진 건물 738곳 중 1곳을 제외한 737곳의 건물이 지반침하 여부 등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지하안전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본보 전수조사 결과 확인됐다. 사진은 2023년 2단계 조성이 완료될 명지국제신도시. 정종회 기자 jjh@ 명지국제신도시에 공사중이거나 이미 지어진 건물 738곳 중 1곳을 제외한 737곳의 건물이 지반침하 여부 등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지하안전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본보 전수조사 결과 확인됐다. 사진은 2023년 2단계 조성이 완료될 명지국제신도시. 정종회 기자 jjh@

명지국제신도시에 지어진 건물의 상태를 전문가들은 ‘사상누각’이라고 진단한다. 충분한 점검과 지하 조사 이후 지어지는 건물이라면 연약지반에 지은 건물이라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지만, 지하안전영향평가와 같은 심도 깊은 지반조사 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건물 침하뿐 아니라 일대 도로, 보도블록 등 기반시설 침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이은 지반침하 피해를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건물 안전성 전수조사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상누각’ 진단

명지신도시, 대표적 연약지반

응집력 약한 퇴적물 다량 함유

건축 허가 권한 경제자유구역청

지하안전특별법 소급 불가 이유

침하 이후 점검… 소극적 대응만

건축 전문가 “굴착공사 안전 우려

책임 기관 전수조사 등 대책 절실”

■법망 벗어난 명지국제신도시

명제국제신도시는 지하안전특별법의 법망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미 지어진 건물 716동 중 지하층이 있는 227동에다 신축되고 있는 22동 모두 지하층이 있는 건물이지만 이 중 단 한 곳만 지하안전영향평가를 거쳤다. 법이 생기기 이전 건축 허가를 받았거나 지하층이 10m 미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하층은 지하 깊이 10m 미만인 1층만 만들고 초고층 건물을 짓더라도 평가 대상이 아니다. 명지국제신도시 내 한 건물의 경우 지하 5층 깊이의 대규모 굴착공사가 진행됐지만 지하안전법 시행 이전에 허가를 받아 지하안전영향평가 없이 건물이 세워지고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인근에 깊은 터파기 공사가 진행될 경우 암반층에 고정되지 못한 건물 철골물로 인해 건물 피해뿐만 아니라 일대 기반시설(도로, 보도블록) 침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기반암까지의 깊이를 나타낸 지도. 붉어질수록 지반 침하 위험성이 높아진다. 기반암까지의 깊이를 나타낸 지도. 붉어질수록 지반 침하 위험성이 높아진다.

현행법상 지반침하를 예방하고 진단하기 위한 검사는 건물 착공 전 지하안전특별법을 근거로 이뤄지는 지하안전영향평가가 유일하다. 지하안전영향평가는 지난해 1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지하 10m 이상 굴착 공사를 할 경우 사업시행자는 지하안전평가 전문 대행기관 등에 의뢰해 지하 공사 건설 계획 등을 담은 지하안전영향평가서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평가서는 국토관리청과 전문기관의 검토를 거친다. 잦은 건물 인근 침하, 싱크홀 등의 발생으로 지하 안전을 담보한 건축 허가가 필수적이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법 제도의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허가 과정에서 손을 놓은 경자청의 ‘무책임 행정’도 시민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소급 적용이 어려울 경우 자체 건축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건축 과정에서 허가 과정을 엄격하게 하거나 땅파기 과정에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을 할 수도 있지만 부산시, 강서구청, 경자청은 “법 소급이 어렵다”는 핑계 아래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울산, 서울 등 지반이 상대적으로 연약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지하안전위원회 등을 꾸려 지반 침하에 경각심을 가진 행정을 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반침하가 발생할 경우, 지반침하 발생지와 일부 공사 현장에 특별점검을 나가는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전부인 실정이다.

부산과학기술대 정진교 교수는 “건축물이 들어설 때에 대한 설계 조건이 연약지반인 서부산 일대는 좀 더 철저하고 엄격해야 한다”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에서 허가를 내줄 때 상시 침하 부분 계측을 의무화하도록 명기하는 등 엄격한 허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자청은 지하안전영향평가의 경우 법적 조항에 따른 것이고 공사 현장과 지반침하 발생지에 대한 특별점검을 시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경자청 관계자는 “지하안전법 시행 이전에 들어선 건물에 대해 이 법을 소급해 지하안전영향평가를 시행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추후 들어설 건물에 대해서는 지하안전법상 지하안전영향평가 대상에 속하면 체계적인 점검을 거쳐 철저한 감독을 통해 건축 허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무르디무른 땅, 특단대책 시급

전문가들이 명지국제신도시 건축 허가 과정에서 특단의 지하안전진단이나 점검을 요구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명지국제신도시의 연약지반 특성이 자리한다. 강서구 명지동 일대는 충적층(하천에 의해 퇴적물이 쌓여서 생긴 굳지 않은 퇴적층)으로 이뤄진 대표적인 국내 연약지반으로 꼽힌다. 낙동강 하류 지역인 이곳 일대는 퇴적연대가 비교적 짧고 점토 실트 등 응집력이 약한 세립질 퇴적물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이 지역은 퇴적층 깊이가 50m를 넘어서는 곳이 대부분이다. 50m 깊이까지는 단단한 암석 없이 흙과 펄로만 이뤄져 있어 거동 현상이 쉽게 발생할 수 있고 지반이 튼튼하지 않다는 뜻이다.

부산대 지질재해산업자원연구소 연구팀에 따르면, 동부산 일대 퇴적층 깊이는 약 20~30m에 그치지만, 명지동 일대는 지하층 기반암(bedrock)까지 깊이만 해도 최대 80m에 달한다. 기반암 위에 형성된 연약점성토층의 두께는 14.2~36.2m로 분포된 점에서 현재 건축물들의 건물 기본 골조는 대부분 연약점성토층에 박혀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설비 전문가는 “서부산 하구 일대 지반은 연약 토층에 물까지 많아 굴착 공사 시 극도로 주의해야 할 정도로 안전이 우려되지만, 제대로 된 굴착 기술자가 시공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빨리 준공을 하려는 시공사의 경향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주기적이고 불시적인 특별 점검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용·곽진석 기자 jundragon@busan.com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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