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춘문예-동화] 영식이와 나 / 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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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영식이와 나, 둘 뿐이었다. 자전거가 없는 아이는.

몇 안 되는 동네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보내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몇 번의 새 학기를 보내는 동안 모두 자전거가 생겼다. 아이들은 쌩쌩 잘도 달렸다. 둑길을 지날 때마다 마른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학교에 가는 아이도 영식이와 나, 둘 뿐이었다.

학교 가는 길은 멀고 지루했다. 보이는 거라곤 아득히 펼쳐진 논과 밭이 전부였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가다 보면 늘 저 앞에 영식이가 있었다. 걸을 때마다 댕강 올라간 바지 사이로 영식이 다리가 보였다 사라졌다.

나는 영식이와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하지만 조금만 속도를 내면 영식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영식이는 느릿느릿 굼벵이처럼 걸었으니까.

‘또 멈추겠지?’

그 생각을 하면 꼭 영식이가 멈춰 섰다. 내 발소리를 듣고 그러는 게 분명했다. 영식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발끝으로 툭, 툭 바닥을 찼다. 나는 그런 영식이를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영식이는 같은 반 아이였다. 비쩍 마른 몸에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 한 번 입은 옷은 며칠이 지나도록 바뀔 줄 몰랐다. 아이들은 툭하면 영식이를 놀려댔다. 가장 고약하게 구는 것은 현수였다.

“얘들아, 어디서 오줌 냄새 안 나냐?”

현수가 코를 치켜올리며 킁킁 소리를 냈다. 아이들이 깔깔 배를 잡고 웃었다. 영식이는 빨개진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자전거가 생겼다.

“나 이거 안 타.”

“뭐야?”

“누가 이런 자전거를 타.”

아빠 얼굴이 순식간에 험상궂게 변했다.

“이눔 자식! 네 맘대로 해라.”

아빠가 혀를 차며 뒤뜰로 가버렸다.

낡아빠진 자전거였다. 벌그죽죽한 녹을 온통 뒤집어 쓴 자전거는 보기만 해도 쇠냄새가 풍겼다. 누군가 내다 버린 걸 냅다 끌고 온 게 틀림없었다.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은빛 안장을 반짝이며 달려가는 자전거가 눈에 아른거렸다. 현수 얼굴도 떠올랐다.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린 채 따다닥! 기어를 바꿀 때면 나도 모르게 꼴깍 침이 넘어갔다. 따다닥! 그 소리가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새 자전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런데 고작 끌고 온 게 저런 고물 자전거라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다음 날 아침, 막 집을 나설 때였다.

“걷지 말고 달려! 그러다가 해 떨어진다.”

현수가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돌리며 지나갔다. 뒤따르는 아이들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자전거가 지나간 길에 길게 바퀴 자국이 남았다. 나는 멀어져가는 아이들 뒤통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씨.”

뒤늦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홧김에 바닥에 난 바퀴 자국을 발로 마구 문질렀다. 목이 칼칼하게 먼지가 일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드니 영식이가 있었다. 기척도 없이 서서는 내 하는 짓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뭘 보는데?”

나도 모르게 톡 쏘아붙였다.

“어? 아니, 난 그냥…….”

영식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영식이가 대꾸할 틈도 없이 홱 돌아섰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마루에 벌렁 드러누웠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그깟 자전거가 뭐라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현수 머리통이라도 확 들이받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덩치가 컸다. 두툼한 입술을 씰룩거리며 눈을 부릅뜨면 속이 뜨끔했다. 대들기는커녕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별안간 담벼락에 세워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을 받은 자전거가 바닥에 반짝이는 그물을 만들었다.

‘한 번만 타볼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처음 타보는 자전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쓰러지고 곤두박질치기를 수십 번. 배뚤대던 자전거가 어느 순간 곧게 달리기 시작했다.

“우와!”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쓸고 갔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날 저녁 땅거미가 질 때까지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다음날부터 당장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서는 걸 아빠가 봤다.

“안 탄다고 난리 치더니?”

아빠가 한마디 툭 던지며 웃었다.

자전거 위에서 보는 풍경은 특별했다. 내가 달리면 나무와 풀도 함께 내달렸다. 페달을 돌릴 때마다 학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냥 가만히 앉아 다리로 동그라미만 그리면 됐다.

‘이제 늦잠도 실컷 자겠다.’

하지만 정작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영식이를 지나치던 순간이었다. 혼자서 걸어가던 영식이를 쌩 지나치던 순간, 온몸에 찌릿 전기가 돌았다.

영식이 표정이 궁금했다. 날쌘 치타처럼 달려가는 내가 얼마나 부러울까?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쩍 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앞만 보고 곧장 달렸다. 미끄러지듯 달리는 뒷모습을 영식이에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날아갈 듯한 기분도 잠시였다. 다른 아이들 옆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새 자전거에 비해 내 자전거는 너무나 볼품없었다. 게다가 자전거에서 쉴 새 없이 소리가 났다. 끼릭끼릭. 끼릭끼릭. 아무리 기름칠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죽자고 울어댔다.

“자전거가 왜 그 모양이야? 어디 박물관에서 모셔왔냐?”

대번에 현수의 놀림이 날아들었다. 얼굴이 녹슨 대문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에잇, 고물 자전거!”

아이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한바탕 욕을 쏟아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둑길을 달리는데 철커덕! 체인이 풀려버렸다.

“조금만 빨리 달리면 이 모양이야.”

축 늘어진 체인을 보며 툴툴거렸다.

그때였다.

“왜 빨리 가려고 해?”

느닷없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가면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영식이였다. 영식이의 까만 눈동자가 전에 없이 반짝거렸다.

“그거 알아? 길이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거. 맘이 맞는 사람이랑 가면 먼 길도 짧아진대.”

평소와 다른 영식이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때였다. 짜릉짜릉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 무리 자전거가 몰려왔다. 현수 패거리였다. 현수가 영식이와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소리쳤다.

“어이, 리끼리끼! 거기서 뭐하냐?”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리끼가 뭔데?”

“넌 리끼도 모르냐?”

현수가 나와 영식이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끼리끼리 논다는 소리지.”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사라졌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날 이후 영식이를 모른 척 지나쳤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번엔 달랐다. 영식이와 눈도 마주치기 싫었다. ‘리끼리끼’ 소리가 내내 귀에 붙어 다녔다. 끼릭거리는 자전거 소리도 그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영식이의 뒷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영식이는 앞으로 걷고 있는데 자꾸만 뒤로 가는 것 같았다. 영식이가 걷는 길만 자꾸만 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아무래도 비가 올 모양이었다.

‘걸어갈까?’

대문 밖을 내다봤다. 학교 가는 길이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후딱 타고 가면 괜찮겠지.’

얼른 자전거에 올라탔다.

쿠릉쿠릉. 하늘이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투둑, 툭.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저 멀리 영식이 모습이 보였다.

‘어쩌지? 타라고 할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이 영식이 앞까지 와버렸다.

천천히 브레이크를 잡았다.

“끼리리리릭!”

깜짝 놀란 영식이가 뒤를 돌아봤다. 영식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영식이 얼굴에 반가운 빛이 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페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전거가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영식이를 두고 그냥 달려가 버렸다.

“철커덕! 턱턱턱!”

학교에 거의 다 왔는데 체인이 풀렸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정신없이 자전거를 끌고 갔다. 교문을 지나자마자 자전거를 홱 팽개쳐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자전거 바퀴가 핑그르르 돌았다.

교실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모두 와 있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내 주위가 어둑해졌다. 쿠르르르릉! 하늘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토해냈다.

“어! 비 온다!”

누군가 외쳤다. 비가 세차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교실 안까지 내쳐 들어왔다.

“창문 닫아라.”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이 창가로 달려갔다. 비어있는 영식이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영식이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쏴아아아아. 창밖으로 내리꽂히는 빗소리가 아프도록 귀를 때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뒷문이 열리고 영식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갑자기 현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하늘이 미쳤나 봐요.”

“무슨 소리야?”

“하늘에서 까만 비가 내리잖아요.”

현수가 영식이 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리로 향했다. 현수 말은 사실이었다. 영식이 손끝에서 뚝뚝 시커먼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더러워.”

“씻지도 않고 다니는 거야?”

아이들이 소란을 피웠다. 선생님이 탁탁 교탁을 두드렸다.

“조용, 조용! 영식이 넌 화장실에 가서 씻고 와라.”

영식이가 들어왔던 문으로 뒤돌아 나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날 나는 온종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음날, 영식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결석이었다. 선생님은 영식이가 아프다고 했다. 소나기가 퍼붓던 날 꼼짝없이 비를 맞고 탈이 난 게 분명했다.

학교 가는 길이 휑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도 길은 멀게만 보였다.

“끼릭끼릭, 끼릭끼릭.”

녹슨 자전거 소리가 꼭 영식이 앓는 소리 같았다.

“철커덕!”

또 체인이 풀렸다. 오늘따라 체인이 잘 걸리지 않았다. 손이 온통 기름으로 시꺼메졌다.

그때 머릿속에 번쩍! 불이 일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던 게 생각났다. 그날 아침 분명히 체인이 풀려있었는데!

그제서야 영식이 손이 떠올랐다. 뚝뚝 시커먼 물을 떨구던 손. 기름으로 엉망이 되어 있던 손. 영식이가 자전거 체인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런 바보!’

영식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툭툭 바닥을 차던 영식이. 그랬다. 영식이가 차던 것은 바닥이 아니었다. 그건 나였다.

툭툭, 나랑 같이 갈래?

툭툭, 너랑 가고 싶어.

툭툭, 너 말이야 너.

‘이런 바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며칠이 지났다. 누군가 둑길을 걷고 있었다. 깡마른 다리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이. 영식이었다.

“끼릭끼릭”

고물 자전거가 영식이에게 다가갔다.

“끼릭끼릭”

고물 자전거가 영식이를 지나쳤다.

“끼리리리릭!”

고물 자전거가 멈춰 섰다.

나는 걸어오는 영식이를 기다렸다. 이번엔 내가 기다릴 차례였다.

영식이와 나, 둘 뿐이었다. 논과 밭이 전부인 길, 그 길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아이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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