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싣고 영도에 상륙한 가장 ‘부산’스러운 배 '피아크'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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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복합문화공간 '피아크'

사진부터 위에서부터 부산 영도구 동삼동 야간의 피아크 전경. 4층의 카페&베이커리 내부. 피아크 제공 사진부터 위에서부터 부산 영도구 동삼동 야간의 피아크 전경. 4층의 카페&베이커리 내부. 피아크 제공

지금 부산 여행의 가장 뜨거운 연관 키워드는 ‘영도 피아크(P.ARK)’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노후공업지역에 어느날 뚝 떨어진듯 들어선 방주 모양의 거대한 건물. 올 5월 카페와 베이커리 층이 사전 오픈하자마자 입이 딱 벌어지는 규모와 기막힌 바다 경관으로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정식 이름은 ‘피아크 문화복합 생산 플랫폼’. 보이는 것 이상의 전망을 품고 있는 피아크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소 빈 땅에 크루즈 본뜬 6층 건물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방주 플랫폼’

수직·수평으로 탁 트인 개방감 인상적

계단형 좌석에 길게 뻗은 오션 가든

4층 카페·2~3층 전시장·팝업 매장…

오륙도·부산항 ‘부산다운’ 풍경 조망

마케팅 없어도 일 평균 3000명 북적


위에서부터 개관 전시 ‘텍스처 하우스’. 2층 ‘오션 가든’에 깔린 노을, 갤러리 겸 카페 스크랩. 최혜규 기자·일부 피아크 제공 위에서부터 개관 전시 ‘텍스처 하우스’. 2층 ‘오션 가든’에 깔린 노을, 갤러리 겸 카페 스크랩. 최혜규 기자·일부 피아크 제공

■가장 부산다운 전망

피아크는 최근 영도의 관광지 목록에 ‘핫샷 데뷔’했다. 영도대교에서 시계 방향으로 섬의 위쪽을 따라가다 동삼혁신도시가 나오기 전, 침체된 조선공업지역이 피아크의 무대다. 처음 방문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행선지는 4층의 카페&베이커리. 입구의 베이커리 진열공간과 밀크티 냉장고에서 원하는 메뉴를 고르거나 커피를 주문하고 나면 압도적인 규모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첫 인상은 탁 트인 개방감이다. 카페의 실내 면적은 550평.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려서 내놓는 브루잉 바가 있는 정면과 이어지는 측면까지 2개 면의 통유리창 너머는 모두 바다다. 중앙의 중정과 3층 층고까지 파내려간 계단형 좌석도 수직의 개방감을 준다. 계단형 좌석에서 보이는 아래쪽 창으로는 인조잔디가 깔린 2층의 야외 광장 ‘오션 가든’이 내려다보인다. 잔디 위에 무료 대여 돗자리를 편 커플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림 같다.

5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도 계단형 좌석인데,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병풍 같은 바다 조망 아래 너비와 높이 모두에서 방대한 공간을 최대한 시야에 담을 수 있다. 피아크 박갑은 총괄이사는 “시네소 에스프레소 머신, 드비알레 스피커 등 설비와 이탈리아의 유명 조명 브랜드 아르떼미네의 무드등, 플랜테리어 디자인 그룹 ‘마초의 사춘기’가 참여한 실내 정원 등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2층 오션 가든은 650평으로 실내보다도 넓다. 이 곳의 파노라마 바다 전망은 피아크의 가장 큰 힘이다. 방파제 주변으로 긴 세월 풍파를 헤쳐온 선박들이 정박했고 또다른 배들은 바다 건너 감만부두의 크레인들을 배경으로 유유히 오간다. 오른쪽에 오륙도가 또렷이 보이는 낮만큼이나 부산항과 부산항대교가 조명을 밝히는 밤의 풍경도 근사하다. 2층보다 규모는 작지만 5층과 6층, 루프탑에도 오션 가든이 있다.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은 연면적 3000평을 훌쩍 넘는다. 2층과 3층 실내 공간은 전시장이다. 지금은 개관 전시 ‘텍스처 하우스’가 열리고 있다. 오션 가든의 잔디 광장 옆에는 피자와 치킨, 맥주를 파는 식당 ‘더 갤리’와 다양한 카테고리로 단기간 운영되는 팝업 매장 건물이 있다. 지하 1층에도 멀티룸을 두었다.

두 건물 사이로 들어가면 짧은 연결통로를 통해 옆 건물 사무동과 이어진 ‘스크랩’으로 갈 수 있다. 갤러리와 카페, 아트숍을 결합한 공간으로, 피아크보다 앞서 개관했다. 아늑한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더 마음에 들 것이다. 포스터나 달력 등 개성 있는 작가들의 아트 상품을 살 수도 있다.

일체 홍보도 없고 코로나의 타격도 있었지만 하루 평균 3000명, 6월 한 달에만 카페 음료 구매 기준 6만 명이 피아크를 다녀갔다.

박갑은 총괄이사는 “영도 특산물 활용이나 글루텐 프리·유기농 빵 등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고, 베이커리나 원두 온라인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가 흐르는 공간

스크랩까지 보고 나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피아크의 전체 퍼즐이 맞춰진다. 도대체 누가, 왜, 여기에 이런 건물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커진다. 수리조선업체 제일엠텍 등 여러 법인을 보유한 부산의 조선 강소기업 제일그룹이 주인공이다. 제일그룹은 조선업 침체로 빈 너른 부지를 사서 공장 여러 개로 쪼개 되파는 대신에 영도, 나아가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로 한다. 앞서 2018년 피아크 부지 옆에 그룹 사무동을 이전 신축할 때 부산항 조망에 반해 만든 루프탑 카페 ‘비토닉’이 원형이다.

“해운대 바다나 마린시티 마천루도 좋지만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와 부산항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은 영도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부산스러운’ 풍경입니다. 영구 조망인 동시에 북항 개발에 따라 앞으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기대되는 위치이기도 하고요. 부산 사람이나 관광객 모두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있다면 영도는 물론이고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제일그룹 류인석 회장이 낯선 유통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건 이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정체성을 살려 대형 크루즈 선박을 모티브로 하고, 조망을 위해 필로티를 띄우고, 개방감을 위해 실내 계단형 좌석을 넣을 것을 주문했다. 처음부터 차별화와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규모를 생각했지만, 설계 면적이 계속 늘어나면서 건물에만 500억 원이 투입됐다. 초대형 카페와 전시장, 비상업적인 휴식 공간인 ‘오션 가든’을 두고 주변에서는 수익성을 우려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다. 부산 인구와 관광객 예상 수요가 있으면서 비교적 싸게 땅을 확보했기 때문에 밀어붙일 수 있었다.

“오션 가든 공간은 피아크의 심장이자 허파입니다. 소규모 매장을 쪼개서 임대하면 당장 수익은 될지 몰라도 오래가는 랜드마크가 되려면 문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서울 연남동에서 시작해 전국에서 활약해 온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인 ‘어반플레이’와 경기 김포 시골에서 출발해 서울 도심 백화점까지 진출한 밀크티 카페 ‘카페, 진정성’이 일찌감치 합류해 초기 기획과 공간 구성 컨설팅에 나섰다.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방주 플랫폼’이라는 뜻의 상호 피아크도 이런 취지를 담았다.

피아크는 아직 미완성이다. 5층과 6층은 피아크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식당, 소규모 행사나 결혼식 등을 염두에 두고 여러 경로로 협의하고 있다. 2층 뒤쪽 ‘백가든’에는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펫존’을 준비하고 있다. 2층 오션 가든은 공연, 마켓,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행사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전국에서도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야외 공용 공간과 전시실을 활용해 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가 계속 흐르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돈벌이를 떠나 영도에서 사업을 일군 기업인으로서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공간을 만든다면 영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인석 회장이 꿈꾼 피아크의 항해는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시내버스 66번 딱 한 개 노선이 지나는 피아크 앞에는 나날이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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