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기사 합작품 시리얼 넘버원 M16 받아든 박정희 대통령 '눈물'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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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인in人] 1. 강흥림 건형 부자가 씨줄로 엮어가는 조국애



SNT모티브 방산공장 입구 정밀조병 탑에 선 강흥림 씨. SNT모티브 방산공장 입구 정밀조병 탑에 선 강흥림 씨.

청년의 꿈이 영글다

한양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구로구의 한 스프링 제조공장의 설계 기사이던 30대 중반의 강흥림(83) 씨는 1971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M16 소총 제조공장 도미 훈련 기사 모집' 공고였다. 당시 5대 일간지에 신설하는 국방부 조병창에서 근무할 기사를 뽑는다는 내용의 공고가 동시에 게재됐다. 신문을 오려 모집 공고를 잘 갈무리한 강 씨는 결심했다. '그래 부산으로 가자.'

1971년 강 씨는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온 응모자 중에서 '도미 기사'에 당당히 선발됐다. 당시로는 참 생소한 '소총 제조공장'은 실은 박정희 대통령이 오랫동안 준비한 '자주국방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현재는 기밀이 해제된 1969년 8월 8일 대통령비서실 문건 'M16 및 탄약공장 설치를 위한 차관 교섭'에 따르면 같은 해 7월 26일 주한미국대사와 8군사령관 등은 미국무성과 국방성에 '향후 (한국 내 소총 생산안) 교섭은 정부 대 정부 교섭으로 하고(중략) 한국 정부의 100% (소총) 국내생산안이 경제적이며, 한국 정부안을 지지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 교섭이 잘 진행돼 한미 정부 차원에서 M16의 한국 생산이 최종 성사되면서 도미 기사 모집이 현실화했다.



M60을 개발하던 당시의 강흥림 씨. M60을 개발하던 당시의 강흥림 씨.

삶의 뿌리는 민족정신

강 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서 이직 결심을 하고 이사까지 결심하며 생면부지의 부산으로 오게 된 이유가 실은 있었다. "제가 오산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독립선언서 33인의 한 분인 이승훈 선생이 세웠고 조만식 선생, 함석헌 선생, 한경직 목사를 배출한 명문이죠. 여기서 민족정신을 배웠습니다." 강 씨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자주국방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도미 기사' 응모에 한 치도 망설임이 없었다고 했다.

"국방부 조병창 준비단장은 군인이었죠. 유삼석 소장이라고 조병창장을 맡았습니다. 도미 기사 단장은 강영택 대령이 맡아 우리를 이끌었죠." 강 씨는 함께 선발된 기사들과 함께 1972년 3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연수지는 미국 총기 명문 기업 콜트(Colt)사였지만, 우선 도착한 곳은 텍사스에 있는 미 국방어학원(DLI)이었습니다. 여기서 세계 각국에서 온 공군 파일럿과 3개월 언어연수를 받은 후 콜트사로 가서 기술 연수를 했습니다."



미국 콜트사에서 연수할 때의 강흥림 씨. 작업복의 기름때가 거룩하다. 미국 콜트사에서 연수할 때의 강흥림 씨. 작업복의 기름때가 거룩하다.

미국으로 가다. 콜트사

일반인은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대 강 씨는 동료들과 1년 가까운 연수 생활을 했다. "콜트사의 연수는 1 대 1 수업이었습니다. 제 사수가 러시아 출신이라 우린 '러시안'이 불렀죠." 강 씨는 서부시대부터 총기를 만들어온 노하우를 지닌 콜트사에서 M16 소총에 들어가는 126개 부품 중에 16개 부품을 맡았다. 주로 스프링과 롤핀이었다.

콜트사 근처 아파트에서 합숙하며 지낸 27명의 도미 기사들은 1973년 1월 귀국했다. 이어 부산 국방부 조병창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시리얼 NO.1이 찍힌 M16을 드디어 만들어냈다. "청와대에서 1호 국산 소총 M16을 받아본 박정희 대통령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 기사들도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 씨는 조병창이 가동되고 6개월쯤 지난 그해 6월 박 대통령이 직접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국방부 조병창을 방문해 관계자를 격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79년 국방부 연두순시를 끝낸 박정희 대통령이 전시된 국산 M16소총을 둘러보고 있다. 부산일보DB 1979년 국방부 연두순시를 끝낸 박정희 대통령이 전시된 국산 M16소총을 둘러보고 있다. 부산일보DB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

강 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소총 국산화는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병창 간부들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은 임진왜란이나 을사늑약이 한국이 총이 없어서 일본에 수난을 당했다며 국산 총기 개발을 강력하게 지시했답니다. 비서진이 알아본 결과 당시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미군이 쓰는 M16이 무게도 적당하고, 연발 사격 기능이 있어 참 좋다고 건의해 콜트사와 협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 씨는 "당시 국산 소총 개발 준비단이 심지어 공산국가 총기까지 입수해 분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6·25 때 중공군의 따발총에 충격을 받은 터라 M16의 연발 사격 기능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미 기사의 부산 귀국으로 국방부 조병창은 유사 이래 첫 국산 소총을 생산한 자주국방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미 기사의 선진 기술은 한국 정밀기계공업의 기술을 혁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강 씨는 기억했다. "1975년부터 경남 창원공단에 방산업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도미 기사들이 강사가 되어 기술 강의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저도 창원공단에 자주 강의를 나갔는 데, 감히 우리나라 정밀기계공업의 기초가 되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심을 가집니다."



방산공장을 찾은 외국 기술자. 방산공장을 찾은 외국 기술자.

정밀공업의 전파자

강 씨는 “당시 공대는 일본 교육을 받은 교수법으로 대학을 나와도 막상 기업에 취직하면 전문 기술을 쓸 수가 없었는데 미국 콜트사 연수를 통해 정밀기술 교육을 받은 터라 창원의 방위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귀국한 첫해 국가가 제공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최신식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강 씨는 그해 둘째 아들 건형(48) 씨를 낳았다. "조병창 아파트는 당시 최신식이라 모두 부러워했죠.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강 씨는 1978년 기술을 발휘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탄환 클립을 국산화한 공로로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국방부 조병창은 1981년 민영화돼 (주)대우정밀로 바뀌었다. 강 씨는 대우정밀에서 품질관리부장 시설부장 등을 거쳐 1993년 대우정밀 자회사 한국기전(주)의 상무로 퇴직했다.




애칭이 '러시안'인 콜트사 기술 사수(오른쪽)와 함께 했다. 애칭이 '러시안'인 콜트사 기술 사수(오른쪽)와 함께 했다.

아들아 이젠 네가 맡아라

조병창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들 건형 씨는 아버지를 닮았던지 어릴 적부터 녹음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 건형 씨는 아버지가 자주국방의 염원으로 다녔던 그 회사 SNT모티브(옛 대우정밀)에 1996년 입사했다. 건형 씨는 자동차 전자 관련 파트에서 일하지만, SNT모티브의 뿌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방부 조병창임을 잘 알고 있다.

부자는 최근 최초의 국방부 조병창이자 국산 총기 1호 생산지 SNT모티브 방산공장 입구 '정밀조병' 휘호 탑 아래서 만났다. 일이 바빠 자주 뵙지 못한 아버지를 본 건형 씨가 훈장을 단 아버지를 보고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자주국방의 전사로, 아들은 그 아버지가 닦은 터에서 미래 자동차를 개발하는 산업역군으로 만난 것이다.

50년 전 국방부 조병창이 내건 기치 ‘자주국방’은 테크놀로지 기업 SNT모티브에서 첨단산업으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73년 11월 29일 국방부 조병창 건립 기념 비문에 이렇게 새겼다. '국방은 한 나라의 존립을 보장하는 최대의 요건. 방비를 등한히 해 외적의 침략을 받았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말자. 여기 자주국방을 다짐하는 무기 생산의 터전을 마련했다. 우람한 가동 소리는 조국의 영원한 안전과 자유를 굳건히 보장하리라.' 선생의 말씀을 축약했지만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시원이 부산 기장군 철마면 전 국방부 조병창이다. 조병창은 (주)대우정밀로 민영화한 뒤 현재 SNT그룹(회장 최평규)의 SNT모티브로 발돋움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자주국방의 대의는 면면히 이어진다. 그 거룩한 여정에 묵묵히 복무한 이들을 발굴해 <부산일보>는 ‘자주국방 인in人 시리즈’를 지면과 온라인에 연재한다. 모든 영웅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를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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