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떠밀려 뒤늦게 사과…“책임지는 이 왜 없나”
사고 책임론 본격화
여론 지탄에 이틀 만에 방향 선회
행안부 장관·시장 등 뒤늦게 사과
시민단체, 이상민 등 공수처 고발
책임자 규명 수사 불가피할 듯
1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이 흘렀지만 경찰과 행정기관은 성난 여론에 형식적인 사과만 뱉을 뿐 폭탄 떠넘기듯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다. 참사를 막지 못한 기관의 책임론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행정안전부 장관과 서울시장, 경찰청장이 잇따라 고발되며 상부 책임자 수사 국면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살피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이 같은 입장은 반성이 아닌 비난을 피하기 위한 해명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관련 긴급 브리핑’에서 이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는 아니었다.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고 발언했다. 참사 직후 행안부 인파 밀집 대응 매뉴얼 부재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할 만큼 했다는 취지의 주무 부처 장관 발언에 뭇매가 쏟아지자 이틀 만에 ‘무조건 사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입장을 바꾸기는 참사 관할 지역의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마찬가지다. 박 구청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참사 이후 박 구청장은 “주최가 없으니 ‘축제’가 아닌 ‘현상’, 구청 역할은 다 했다”는 취지의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구청장 역시 지탄에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이다.
국민적 비난이 경찰과 행정당국의 부실 대응으로 좁혀지면서 뒤늦은 사과는 바통 넘기듯 이어졌다. 이날까지 입을 닫고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서울시청에서 입장 표명을 통해 “시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특별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이날 경찰청에서 ‘이태원 사고 관련 경찰청장 브리핑’을 열고 “112 신고에 대한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 무한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청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현장 대응의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태원 참사 직전 112에 접수된 녹취록에 따르면 ‘인파 통제가 안 돼 불안하다’ ‘사람들이 쏟아져서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시민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별도의 통제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경찰은 서울교통공사와 ‘지하철 무정차’를 놓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은 ‘사고 전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요청을 했다’고 주장했고, 공사 측은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 요청이 왔다’는 취지로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했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소방청의 긴급 현안보고가 있었지만, 긴급 상황인 점이 감안돼 책임 추궁은 이뤄지지 않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에 대해 “용산구청장부터 경찰청장, 행안부 장관, 대통령까지 단 한 명도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만 있다”고 꼬집었다.
경찰이 수사본부를 구성해 참사 원인 파악에 집중하고 있지만, 상부에 대한 책임 규명 수사도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날 오후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은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장관과 윤 청장, 오세훈 서울시장을 각각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사세행 측은 “참사 전부터 많은 인파가 예상돼 위험성이 있었지만 경찰과 행정기관에 의한 안전사고 예방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고발인들은 재난과 안전관리 등 직무를 고의적으로 방기해 300명이 넘는 사상자에 대한 죄책을 져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