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백두혈통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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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09년 9월 ‘만경대 혈통, 백두의 혈통을 이을 청년 대장 김정은 동지’라는 문구가 담긴 벽보 사진이 국내 언론에 공개되면서 북한 정권의 후계자 김정은의 존재가 공식화됐다. 대만 사진작가가 북한 원산의 시범협동농장에서 촬영한 이 벽보에는 김정은을 김정일의 성과를 이어 갈 인물로 묘사했다. 그해 6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북한의 3대 세습을 공개했지만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후계자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된 터였다.

백두혈통은 김일성 일가를 말하는데 김정은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용어다. 김일성과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에서 항일운동을 한 데서 유래했는데 김일성 집권 시에는 ‘백두산 줄기’라는 말이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던 빨치산 인물들에 사용되던 정도였다. 2011년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린 나이의 3남이 권력을 세습하다 보니 등장한 것이 백두혈통이다. 김정은이 집권 초기 김일성 코스프레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로 방문해 전면에 등장한 것도 백두혈통이라 가능했던 이야기다.

19일 진행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는 4세대 백두혈통의 등장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 위원장의 배우자 리설주와 김 부부장까지 총출동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여자아이 손을 잡고 등장한 것이다. 이름과 구체적 사항은 밝히지 않았지만 북한 공식 매체가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 몸소 나오시여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리설주와 2010년, 2013년, 2017년에 걸쳐 세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는 아들로 추정되고 둘째 딸은 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 방북을 통해 김주애라는 이름이 확인됐는데 이번에 공식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4세대 백두혈통의 등장을 놓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화성-17형’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미래세대의 안전을 보장할 전략무기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홍보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다. 4대 세습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김정은의 나이 등을 감안할 때 무리한 추측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베일에 쌓인 북한이다 보니 진실을 알기는 쉽지 않지만 세계를 향한 전략무기 과시 현장에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나오는 지도자의 모습이 참 어색하고 낯설긴 하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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