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같은 당 시장이라도 제대로 견제하는 게 시의회 역할”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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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의회 윤일현 예결특위위원장

시 예산 200억 원 넘게 삭감
박 시장 주요 공약 사업 ‘싹둑’
사업성 부족·과다 편성 ‘경종’
“시와 ‘힘겨루기’는 사실무근”

부산시의 내년도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한 부산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 윤일현 위원장이 예산을 삭감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부산시의 내년도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한 부산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 윤일현 위원장이 예산을 삭감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보다 꼼꼼히 예산 심사를 해서 시의회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시의 내년도 예산안이 부산시의회에서 총액 200억 원 넘게 삭감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국민의힘 시의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부산시의회가 같은 당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이 이끄는 부산시 예산에 대대적으로 ‘칼질’을 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의회는 “일하지 않는 국실 예산을 그대로 용인해 줄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시는 예산 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두 기관 갈등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시 예산안을 큰 폭으로 삭감한 주역은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다. 7~8일 이틀에 걸쳐 수차례 접촉한 윤일현(금정1) 예결특위 위원장은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같은 국민의힘 소속 시장이라도 시정 견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며 “보다 꼼꼼히 예산 심사를 해서 시의회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시의회 내부에 시를 강력히 견제하자는 분위기가 이미 잡혀 있었다는 얘기다.


예결특위가 삭감한 예산은 박 시장의 주요 공약 사업 예산이었다. 시의회가 ‘칼’을 댄 삭감 규모는 203억 원에 달했다. ‘부산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예산 30억 원이 깎인 것을 비롯해 ‘HAHA(하하)센터 생활권별 조성 사업’ 11억 2000만 원, ‘15분 생활권 정책 공모 선정사업’ 30억 원 등 15분 도시 조성 사업 예산이 줄줄이 삭감됐다.

예결특위는 어린이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의 경우 작은 도서관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해도 되는데 굳이 새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하하센터 조성 사업은 기존 복지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되고 사업이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삭감했다. 15분 생활권 정책 공모 선정 사업은 예산만 213억 원이었으나 단계별로 추진해도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예산이 대폭 깎였다.

시의회는 사업성 부족, 예산 과다 편성 등도 문제 삼았다. 윤 위원장은 “시청 공무원의 타성을 적극 견제했다. 같은 당이다 보니 ‘알아서 쉽게 봐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있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공무원들도 있어 이번 심사를 통해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예결특위가 삭감한 사업들은 ‘도심형 청년 창업 주거 공간 조성’(10억 원), ‘찾아가는 건강의료서비스 운영 사업’(11억 6000만 원), ‘차 없는 거리 조성’(18억 원) 등이었다. ‘메가시티 홍보 추진’(3000만 원),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자 부담금’(6억 6280만 원), ‘빛공해 환경영향평가 용역’(2000만 원), ‘부산시 지하수 관리계획 용역 수립’(5000만 원) 등의 사업도 예산이 줄었다.

시는 대규모 삭감에 겉으로는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 시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시의회에서도 “시 간부들의 소통이 부족하다”거나 “사업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시는 배정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투입해 주요 공약 사업을 진행하면서 속도를 조절할 방침이다. 필요하다면 내년 추경에 필요 예산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송경주 시 기획조정실장은 “당장 사업을 추진할 만큼 예산을 확보했다.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사업은 성과를 보고 추경에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놓고 시와 시의회가 ‘힘 겨루기’를 벌인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의회가 예산안 심사를 갖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으나 시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실제 예산 삭감 사태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외부로 공개할 수 없는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양 측 모두 이런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윤 위원장은 “소통이 부족하고 일부 실무진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시와 힘겨루기를 하려고 한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송 기조실장은 “시의회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앞으로 충분한 협의와 소통에 나서겠다”며 시의회와의 갈등은 없다고 밝혔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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