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영광의 얼굴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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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처럼 말간 ‘나의 문학 세계’ 첫발 내딛다

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얼굴에서 설렘과 기대감이 묻어났다. 왼쪽부터 영화평론 조현준, 희곡 주은길, 동시 연지민, 단편소설 이예린, 시조 김원화, 시 이상록 씨. 이재찬 기자 chan@ 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얼굴에서 설렘과 기대감이 묻어났다. 왼쪽부터 영화평론 조현준, 희곡 주은길, 동시 연지민, 단편소설 이예린, 시조 김원화, 시 이상록 씨. 이재찬 기자 chan@

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그런 팽창하는 설렘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미지의 과정이 만만찮게 놓여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어떠하리란 것은 그들이 능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될 터이다. 그것은 달콤하기도 하겠지만 십중팔구 막막하고 외롭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다만 지금은 기쁨과 기대감의 시간이다. 그 기쁨과 기대감이 충분하고 넉넉하게 커야 앞으로의 힘들고 고된 과정을 또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올 당선자는 20대 2명, 40대 1명, 50대 2명, 60대 1명이다. 신춘문예 영광의 주인공들은 그간 고투를 되짚으면서 앞으로의 포부와 희망을 밝혔다.


▶단편소설 당선자 이예린

고교 때부터 습작, 알바도 접고 매진

“경계 바깥 사람들 이야기 쓰고 싶어”


▶시조 당선자 김원화

사별 아픔 휘청이다 시조 만나 위로

“고도한 상징성과 함축 담긴 글 희망”


▶시 당선자 이상록

2015년부터 습작, 퇴직 국어교사

“말의 재미 살린 발견의 시 쓸 것”


▶희곡 당선자 주은길

고교 때부터 극작, 대학도 연극 전공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는 글쓰기”


▶아동문학 당선자 연지민

일간지 기자, 30세에 수필가로 등단

“대상 간결하게 보는 힘, 동시의 매력”


▶평론 당선자 조현준

국문과 박사과정, ‘브런치 작가’ 활동도

“읽기 쉽게 풀어쓰는, 이해 쉬운 글 목표”


단편소설 당선자 이예린(29·경기도 고양시) 씨는 고교 때부터 전업작가의 꿈을 키우며 소설 습작을 해왔다. 생활과 분위기 전환을 위해 대학 때는 극작과로 진학했으나, 역시나 극작보다는 소설 쓰기에 더 몰두했다고. 2018년부터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 도전해왔는데 2021년 유수한 두 곳 공모전의 최종심에 올랐다. ‘조금 더 힘을 쏟자’며 지난해에는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근무하던 알바도 그만두고, 30세 이전에 등단하자는 각오로 글쓰기에 전적으로 매달려 등단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그는 “제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줄 알았으나 글쓰기를 통해서는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에 이르게 되더라”며 “어떤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제가 글쓰기를 통해 받은 위로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글,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시조 당선자 김원화(57·경북 포항시) 씨는 2년간 암투병을 하던 51세의 남편을 2016년 먼저 보낸 아픔 속에서 시조를 만났다. 그는 “미술교사이면서 포항미협지부장을 지내면서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한 화가였던 남편은 제게 너무나 따뜻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며 “남편이 떠난 뒤 많이 울고 휘청거리면서 마음 둘 데 없어 우연히 접한 시조에서 위안을 받게 되면서 시조에 입문했다”고 했다. “남편을 보낸 뒤 7년간 참 많이 아팠어요. 이번 당선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두 점의 반가사유상 전시를 보면서 남편과 같이 보낸 우리 젊은 날의 벅찼던 순간들의 기억을 응축한 작품이에요. 그 기억들이 내 안에 있으니 그것으로 괜찮다, 라는 회한과 깨침을 버무렸지요. 그러면서 꽃이 못 돼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당선돼 뜻밖의 꽃을 선물 받네요.” 그는 “시조는 반가사유상의 미소 같은 것”이라며 “시의 정수가 시조”라고 했다. “고도한 상징성과 함축의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시 당선자 이상록(65·부산 사하구) 씨는 2021년 정년퇴직한 국어교사다. 그는 시에 대한 열망을 알게 모르게 키워왔다. 경북대 국문과를 다니면서 김춘수 권기호 시인의 강의를 들었고,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자신 속의 시가 여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했고,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신춘문예에 처음 도전해 이번에 보기 좋게 당선했다. 그는 “시는 사람과 삶을 담는 글쓰기”라며 “말의 재미를 살린 발견의 시를 쓰겠다”라고 했다. “시를 쓴 뒤 입에 들러붙는지, 자연스러운 호흡을 지녔는지 계속 읽어봐요. 쉬운 시, 공감의 시를 쓰고 싶어요. 시인은 ‘보는 사람(視人)’이라고 했습니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했잖아요. 선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언어로 발견하고 포착하고 싶습니다.”

희곡 당선자 주은길(29·서울 강북구) 씨는 고교 때부터 연극과 극작을 하다가 대학에서 연극 전공을 했고, 2년 전부터 서울의 한 극단에서 연출부 단원을 하고 있다. “연극이 너무 좋다”는 그는 연극배우를 하면서 직접 자신이 생각하는 연극을 만들어보자며 극작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은 20세 때인 2013년이었다고. 그는 “극작은 글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라며 “희곡은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새롭게, 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장르라는 매력을 지녔다”고 했다.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평범한 삶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제 나이에 걸맞게 분노해야 할 일들에 분노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동문학 부문에 동시로 당선된 연지민(59·충북 청주시) 씨는 일간지 20년 차 기자다. 아이들 키우면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리고 청주에서 NGO 활동을 하면서 신문에 프리랜서로 글을 써다가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글에는 관심이 많아 30세 때 수필가로 등단했고,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에 10년 정도 도전했으나 등단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3년 전 동시를 쓰기 시작해 2년 전 〈부산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문학의 모든 영역은 하나의 물길로 가는 것 같다”며 “그중 동시는 아이들의 투명한 세계를 단박에 끄집어내는 찰나의 힘이 대단히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대상을 간결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동시의 매력인 것 같아요. 명랑함과 재치로 명징한 세계를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평론 부문에서 영화평론으로 당선된 조현준(42·경기도 의정부시) 씨는 중앙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다. 신춘문예에 4번째 도전해 당선했다고. “이제 그만 읽고 직접 써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들은 뒤, 책·영화 리뷰를 쓰고 여행에세이를 쓰는 ‘브런치 작가’를 5년 정도 했다. “평론 글은 잘 지켜보고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말하는 것을 언어로 전환해 잘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난도질하지 않고 내가 말하기보다는 작품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읽기 쉽게 최대한 풀어쓰는,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과감히 덜어낼 수 있는 글을 쓸 것입니다.” 그는 “제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러나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며 “대화하는 글, 사랑 받는 글,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설렘의 출사표를 내민 그들, 영광스럽게 출발선에 들어선 그들. 글쓰기를 진정 사랑하며 즐기고 누리는 그들이 되기를 바라는 거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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